E-mail : juntonggahun@naver.com
>> 한국의 성씨


목천우씨(于)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목천우씨)

 

본관(本貫): 목천(木川)

시조(始祖): 우방녕(于邦寧)

유래(由來):

 

목천 우씨(木川于氏)는 중국 하남(河南)에서 계출된 성씨로, ()나라 무왕(武王)의 아들이 우() 땅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땅이름을 성()으로 삼았다가 후에 우()로 고쳤다고 한다.

우리나라 우씨(于氏)는 목천(木川) 단본(單本)이며 고려 중엽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낸 우방녕(于邦寧)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우학유(于學儒)

? 1179(명종 9). 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목천(木州). 우복야 ( 右僕射 ) 방재(邦宰)의 아들이다. 사람됨이 남달랐고 기개가 있어 의종 · 명종 양조에 숙위 ( 宿衛 )하였는데, 오직 충성과 근실로써 임무를 다하였다.

이고 ( 李高 ) · 이의방 ( 李義方 ) 등이 난을 도모하면서 군사를 맡을 자를 의논하는데 모두 말하기를 지금 우공(于公)을 두고 다시 어떤 사람이 있겠는가? ” 라고 하여 그의 집에 가서 일을 의논하자, 그는 말하기를 ()의 뜻은 장하나 나의 아버지가 항상 나에게 말하기를 무관이 문관에게 굴한 지 오래이라 어찌 분하지 않겠으며 그들을 제거함은 썩은 것을 부러뜨림과 같이 쉬운 일이기는 하나, 문관이 해를 당하면 화가 우리들에게 돌아올 것이 너무나 명백하니 너는 이를 삼가야 한다. ’ 라고 하셨으니, 나의 아버지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말씀은 아직 귀에 남아 있으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좇지 못 하겠소. ” 라고 하였다.

뒤에 이고와 이의방이 뜻을 이루어 해치려고 하자 두려운 나머지 이의방의 누이에게 장가들어 화를 면하였다. 1172(명종 2)에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으로 서북면병마사가 되었다. 이 때 성주(成州 : 지금의 평안남도 성천) 사람이 삼등현(三登縣 : 지금의 평안남도 강동)을 없애려고 하여 그에 좇지 않는 자를 죽여 수십명에 달하였고, 또 철주(鐵州 : 지금의 평안북도 철산) 사람은 그 수령을 죽이려고 꾀하다가 서로 다투어 죽는 등 서북면이 자못 소란하였으나, 능히 이를 진압하지 못하였다. 1179년에 벼슬이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이르러 죽었다.

 

우술유(于述儒)

가세(家勢)를 일으킨 대표적인 인물로는 술유(述儒)가 명종(明宗) 때 형부시랑(刑部侍郞)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금()나라에 다녀왔으며, 신종(神宗)이 즉위하자 판형부사(判刑部事)를 거쳐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에 이르렀다.

 

우승경(于承慶)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무신 · 재상. 본관은 목천 ( 木川 ). 1196(명종 26) 최충헌 ( 崔忠獻 )이 이의민 ( 李義旼 )을 제거한 직후에 대장군으로서 우승선에 임명되었다.

다음해에도 궁궐의 이빈문(利賓門) 밖 서쪽 행랑의 기둥에 구멍이 팬 사건이 일어나자, 무신들은 동반(東班 : 文班)이 서반(西班 : 武班)을 저주하여 일으킨 일이라고 하여 분개하였으나 홀로 이들을 설득하여 진정시켰다.

1202(신종 5) 승선으로 있으면서 총재( 愼 宰)이던 최선 ( 崔詵 )과 함께 예빈성 ( 禮賓省 )에 나아가 역관을 선발하였으며, 같은해에 지주사 ( 知奏事 )가 되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여 재추의 반열에 오르고 추밀원사를 거쳐 참지정사 ( 參知政事 )에 이르렀다. 1210(희종 6)에는 직장동정(直長同正) 원서(元 償 )와 공모하여 최충헌을 살해하려 한다는 투서가 있었으나 곧 무고임이 밝혀져 무사하였다.

그러나 다음해에 왕준명 ( 王濬明 )과 환관 등이 최충헌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일어나자, 사전에 이를 알고 있었다는 혐의를 받고 유배되었다.

 

우필흥(于必興)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일관 ( 日官 ). 본관은 목천 ( 木川 ).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학유(學儒)의 아들이다. 1357(공민왕 6) 사천소감(司天少監)으로 있을 때 옥룡기 玉龍記의 기사를 인용,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마쳤으니 그 형세가 물을 뿌리로, 나무를 줄기로 한 땅인지라 흑()으로 부모를 삼고 청()으로 몸을 삼았으니 만약 풍속이 땅에 순응하면 창성하고 땅을 반역하면 재변이 일어날 것이므로, 지금부터 문무백관은 흑의청립(黑衣靑笠), 중은 흑건대관(黑巾大冠), 여자들은 검은 비단을 입게 하고, 모든 산에는 소나무를 심어 무성하게 하고, 그릇은 모두 유기 ( 鍮器 동기(銅器와기(瓦器)를 사용하여 풍토에 순응하게 하라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시행되도록 하였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목천 우씨(木川于氏)는 남한에 총, 282 가구, 1,27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 목록
번호 제 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425 원주 원1.jpg 원주원씨(元) 청남 14-08-29 4690
424 운씨(雲) 청남 14-08-29 3040
423 전주운씨(芸) 청남 14-08-29 2189
목천우씨(于) 청남 14-08-29 2793
421 단양 우.jpg 단양우씨(禹) [1] 청남 14-08-29 7336
420 홍천 용.jpg 홍천용씨(龍) 청남 14-08-29 4456
419 수원요씨(姚) 청남 14-08-29 2831
418 제남왕씨(王) 청남 14-08-29 2502
417 개성 왕.jpg 개성왕씨(王) 청남 14-08-29 3120
416 파평옹씨(雍) 청남 14-08-29 2762
415 옥천 옹.jpg 옥천옹씨:순창옹씨(邕) 청남 14-08-29 3199
414 봉선 온.jpg 봉성온씨(溫) 청남 14-08-29 3354
413 의령 옥.jpg 의령옥씨(玉) 청남 14-08-29 3480
412 배천오씨:부흥오씨(伍) 청남 14-08-29 2501
411 흥양 오.jpg 흥양오씨(吳) 청남 14-08-29 3594
410 화순 오.jpg 화순오씨(吳) 청남 14-08-29 3037
409 해주 오.jpg 해주오씨(吳) 청남 14-08-29 5465
408 함평 오.jpg 함평오씨(吳) 청남 14-08-29 3250
407 함양 오.jpg 함양오씨(吳) 청남 14-08-29 4294
406 평해 오.jpg 평해오씨(吳) 청남 14-08-29 3079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