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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여씨(呂)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함양여씨)

 

 

본관(本貫): 함양(咸陽)

시조(始祖): 여어매(呂御梅)

유래(由來):

 

함양 여씨(咸陽呂氏)의 시조(始祖) 여어매(呂御梅)는 중국(中國) 내주사람으로 당()나라 희종(僖宗) 때 한림학사(韓林學士)로 역임하였는데,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자  877(신라 헌강왕 3)에 신라(新羅)에 귀화하여 경북(慶北) 성주군(星州郡) 벽진면(碧珍面) 정착하고 고려(高麗)에서 전서(典書)를 지냈다.

 어매(御梅)는 두  아들 이청(林淸) 광유(光有)를 두었는데,  임청(林淸)의 후손 자열(子列자장(子章존혁(存赫) 3형제와 광유(光有) 계통 후손들이  함야(咸陽)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여공계(呂公係)

어매(御梅)8세손 공계(公係)는 봉익대부(奉翊大夫)로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하였다.

 

여칭(呂稱)

1351(충정왕 3)1423(세종 5).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중보(仲父), 호는 저곡(樗谷). 고려 말기에 문과에 급제, 사헌부규정·전라도안렴사·전법총랑(典法摠郎전리총랑(典理摠郎) 등을 역임한 뒤, 공주와 나주의 목사 등을 지냈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양광·경상·전라도의 조전부사(漕轉副使)가 되고, 이어 판합문사(判閤門事승추부우군동지총제(承樞府右軍同知摠制) 등을 역임하였을 때에 근면하고 치밀한 사람으로 정평이 있었다.

그 뒤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참지의정부사가 되었다. 1400(정종 2) 병조 전서(典書)가 되고, 1402(태종 2) 태상왕이 된 태조가 북쪽지방을 순행할 때에 동북면의 도순문찰리사(都巡問察理使)로 배종하였다.

1404년에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들어가서 왕실의 계통이 잘못 전해진 것을 바로잡는 데 힘쓰는 한편, 그때 명나라에 억류되어 있던 우리 동포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데 노력하였다.

명나라에서 돌아와 곧 서북면의 도순문찰리사로 병마도절제사를 겸하였다. 1407년에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를 거쳐, 1413년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가 되었고, 그해에 형조판서가 되었다.

1414년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가 되었으며, 그 해에 흠문기거부사(欽問起居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곧 사직, 은거하였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

 

여자신(呂自新)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무과에 급제한 뒤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지내었다. 그때 문종의 부마인 정종 ( 鄭悰 )이 순천에 안치되었다가 사사되고, 부인인 경혜공주(敬惠公主)를 관비로 삼았으나 사역을 시키지 아니하였다.

그 뒤 벼슬이 올라 1479(성종 10) 병조참판이 되고, 1486년 영안남도절도사(永安南道節度使)가 되어 변방의 방어에 전력, 큰 공을 세워 1490년 내직으로 공조참판·병조참판에 제수되었다.

이어 경기도·강원도의 관찰사를 역임하고, 1492년에는 지중추부사로서 성절사로 뽑혀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에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지내고, 연산군 때 오위도총부도총관, 전라도와 함경도의 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내었으나, 갑자사화에 연루되기도 하였다.

중종반정 후 병조와 형조판서를 지내며 많은 치적을 올렸다. 아들 윤철(允哲)과 함께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정장(貞莊)이다.

 

여윤철(呂允哲)

?1509(중종 4).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아버지는 병조판서 자신(自新)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파주목사·평안도절도사·전라도수사를 역임하였으며, 오랜 해상근무로 병을 얻어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서 죽었다. 청렴결백한 무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여유길(呂裕吉)

1558(명종 13) 1619(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덕부(德夫), 호는 춘강(春江). 첨정 세침(世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숙()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순원(順元)이며, 어머니는 경주 이씨로 봉상시정(奉常寺正) ()의 딸이다. 충청도관찰사 우길(祐吉)의 형이다. 성혼 ( 成渾 )의 문인이다.

1580(선조 13)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권지성균관학유(權知成均館學諭)로 임명되었다. 이어 모친상을 당해 물러났다가 복을 마친 뒤 다시 성균관학유 · 학정 ( 學正 ), 봉상시봉사를 거쳐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임명되었으나 반대자의 탄핵으로 취임하지 않았다. 이어 홍문관박사에서 전적 ( 典籍 )까지 올랐다.

그 뒤 사헌부감찰 · 공조좌랑 · 형조좌랑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금교도찰방(金郊道察訪) · 황해도도사 · 양재도찰방(良才道察訪)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행재소로 달려가 호조정랑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헌납 ( 獻納 )으로 발탁되었다.

이어 전운사 ( 轉運使 )의 종사관이 되었다가 중화부사로 임명되었으나 군량 운반의 중임 때문에 부임하지 못하다가, 가산군수에 임명되어 3년 간 근무하면서 많은 치적을 올렸다. 그 뒤 중앙으로 돌아와 검찰사(檢察使) 종사관 · 상의원정(尙衣院正)을 거쳐, 1599년 공주목사로 다시 나갔다.

1601년 장령 ( 掌令 )을 거쳐, 이후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 사도시정(司 歸 寺正) · 군기시정(軍器寺正) · 사옹원정(司饔院正) · 봉상시정 ·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 등을 두루 역임하고, 외직으로 양주목사로 나갔다가 세금을 과도하게 거둬 파면되었다. 그 뒤 다시 외직으로 파주목사 · 밀양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군기시정으로 있을 때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결과, 뒤에 정승 이항복 ( 李恒福 )의 추천으로 선조가 특명을 내려 군기시정에 다시 기용되었다. 이 때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왕조실록의 재간행에 참여하였다. 1608년 선조가 죽자 국장도감도청(國葬都監都廳)이 되었고, 그 공로로 통정대부 ( 通政大夫 )에 승계되었다.

1609(광해군 1) 하절사(賀節使)의 부사로 명나라에 가서 많은 군수 물자를 무역해온 공으로 가선대부 ( 嘉善大夫 )에 오르고 한성부우윤에 임명되었다가 조그만 과실로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동지중추부사로 오위도총부부총관을 겸했다가 병조참판으로 옮겼다.

이어 어버이 봉양을 위해 외직을 청해 남양부사로 나갔다가 1618년 병으로 사직하고 양주의 별장에서 지냈다. 다음 해에 부친상을 당하자 장례의 일을 자신이 직접 처리했고, 지나치게 슬퍼한 나머지 이 해에 죽었다.

산수(算數)에 특히 뛰어났고 천문 · 역법에도 밝았다. 타고난 자질이 온화하고 인자했으나 관사를 처리함에는 과단성이 있었다. 또한 절조가 있고 개결(介潔)해 평생 자신이 한 행동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말못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청렴하여 40여 년의 관직 생활에도 불구하고 가산이 가난한 선비 같았다고 한다. 저서로는 춘강집 이 전한다.

 

여우길(呂祐吉)

1567(명종 22)1632(인조 1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상부(尙夫), 호는 치계 (稚溪, 痴溪). 첨정 세침(世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승지 숙()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 순원(順元)이며, 어머니는 사인 ( 舍人 ) 이영(李瑛)의 딸이다.

1591(선조 24)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596년 사신의 일행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병조정랑·평안도도사·사간원정언· 지평 ( 持平 장령 ( 掌令 직강 ( 直講 )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너그럽고 모질지 않아 화요(華要)의 직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었다.

1603년 밀양부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는데,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전쟁을 마무리짓는 사신으로서 일본에 내왕하면서 포로의 쇄환 등에 공이 많았다. 연안부사가 되어서는 고을을 잘 다스려 여러 수령들 가운데 모범으로 뽑혔다.

후일 평안도안무사(平安道安撫使)를 지냈고, 1614(광해군 6)에는 또다시 진위사 ( 陳慰使 )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618년 공홍도관찰사(公洪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탁월한 외교가로서 전란 이후의 처리를 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방관으로서도 선정을 베풀었다.

 

 

표 출전<하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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