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承(연일승씨)
본관(本貫): 연일(延日)
시조(始祖): 승개(承愷)
유래(由來):
연일(延日) 승(承)씨의 시조는 승개(承愷)로 고려 정종(靖宗:제10대왕, 재위기간: 1034∼1046) 때 대장군(大將軍)을 지내고 문무를 겸전한 지장으로 명망을 떨쳤으며 평북 정주에 정착세거하면서 전세거지인 연일(延日)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승적(承迪)
개의 아들 승적(迪)도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승운(承運)
승의 손자 승운(運)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여 가세를 크게 일으켜서 정주 지방의 명문으로 지위를 굳혔다.
승진택(承震澤)
시조의 23세손 박(撲)의 아들 진택(震澤)이 빈민구휼에 헌신하여 교동에 공적비가 세워졌다.
승요신(承堯臣)
요신(堯臣)은 시문에 능하여 김영록(金永錄)·홍대양(洪大洋)과 더불어 암탄에서 문명을 떨쳐 <신안삼고사>로 불리워졌다.
승낙행(承樂行)
낙행(樂行)은 박통한 학문으로 문하에서 영재를 많이 배출시켜 백당공(栢堂公) 문홍(文弘)과 함께 사림의 존망을 받았다.
승낙원(承樂元)
낙원(樂元)은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여 흥학비가 세워졌고 효행이 뛰어나 나라에서 정려가 세워졌다.
승국진(承國鎭)
학교를 세워 후학교육에 이바지했다.
승계복(承桂馥)
가재를 털어 빈민을 구휼하여 공덕비가 세워진 계복(桂馥)이 유명했다.
승영제(承永濟)
윤장(允章)의 아들 영제(永濟)는 대한독립단 외무부감으로 활약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순절하였다.
승계연(承啓璉)
1919년 대흉년에 사재를 털어 굶주린 군민을 구제했던 계연(啓璉)은 3·1운동 때 일경에 의하여 훼손된 오산고교를 김기홍(金起鴻)·조시연(趙始淵) 등과 함께 재건하여 관서 일대에 이름을 떨침으로써 연일 승씨를 더욱 빛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연일 승씨는 남한에 총 378가구, 1,50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미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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