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孫(청주손씨)
본관(本貫): 청주(淸州)
시조(始祖): 손필영(孫弼榮)
유래(由來):
청주손씨(淸州孫氏)는 밀양 손씨(密陽孫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도시조(都始祖) 손순(孫順)의 25세손 손필영(孫弼榮)을 일세조(一世祖)로 받들고 있다.
「밀양손씨족보(密陽孫氏族譜)」에 의하면 그는 고려 원종(元宗) 때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오른 찬(贊: 도시조 순의 19세손)의 6세손 덕기(德基)의 아들로 전하며, 고려조에서 관직을 지내며 나라에 공(功)을 세워 개성군(開城君)에 봉해졌다가 후에 청성군(淸城君)에 개봉(改封)되었으므로 후손들이 충청도(忠淸道) 음성(陰城)지방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청주를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가문의 중요 인물
손취(孫就)
일세조 필영(弼榮)의 아들 손취(就)가 고려 때 영녕군(永寧君)에 봉해졌다.
손희(孫僖)
필영의 손자 손희(僖)는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를 역임하여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했다.
손원렬(孫元烈)
우문관 대제학(右文館大提學)을 지냄.
손채(孫採)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했던 손채(採:원렬의 아들)는 고려의 국운(國運)이 기울고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진천(鎭川)에 낙향(落鄕)하여 절의(節義)를 지켰으며 뒤에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손근종(孫謹宗)
채의 증손 근종(謹宗)은 이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손희언(孫希彦)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副事先)를 역임했다.
손환(孫環)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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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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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
세
|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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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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炳(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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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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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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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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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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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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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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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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燮(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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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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楫(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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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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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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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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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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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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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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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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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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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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鈺(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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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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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청주 손씨(淸州孫氏)는 남한(南韓)에 총 588가구, 2,71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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