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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영해박씨(朴)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朴(영해박씨)

 

 

본관(本貫): 영해(寧海)

시조(始祖): 박제상(朴堤上)

유래(由來):

 

영해(寧海)는 경상북도(慶尙北道) 동북부(東北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임.

 

 영해 박씨(寧海朴氏)는  신라 제 5대 파사왕(婆娑王: 재위기간 80 ∼ 112)의 5세손인 파진찬 물품(物品)의 아들 제상(堤上)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신라 제17대 왕인 실성왕(實聖王: 재위기간 402 ∼ 417) 때 이웃 일본(日本)이 화친(和親)의 동맹(同盟)을 맺자는 간계(奸計)를 꾸며 신라의 왕에게 왕자(王子)를 맹약의 보증으로 일본에 보내 줄  것을 청하자 실성왕은 내물왕(奈勿王)의 아들인 미사흔(未斯欣)을 인질로  일본에 보냈다. 그 후 미사흔의 형인 눌지왕(訥祗王)이 즉이하여 일본에  억류된 아우를 그리워하며 신하를  보내어 귀환을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때 삽량주  태수로 있던  제상(堤上)이 율포(栗浦: 지금의 경주 남양면 하서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구하여 신라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왜왕(倭王)에게 모진 고초를 당한 후 목도(木島)로 귀양보내져서 소살(燒殺)당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눌지왕은 크게  슬퍼하며 제상에게 대아찬의 벼슬을 내리고 그의 충절을  높이 치하했으며, 제상의 부인은 원한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세 딸을 거느리고 동해(東海)가 바라다 보이는 치술령(致述嶺)에 올라가 날마다  통곡하다가 지쳐 죽으니 나라에서는 치술령에  사당(祠堂)을 세우고 제사지내게 하였으며, 제상의 둘째 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맞게 하여 은혜를 갚도록 하였다.  

그후 사람들은 제상이 떠난 울포 앞바다에서 부인이 엎드려 울었던 하서리(下西里) 갯가를 장사(長沙)라 불렀다 하며,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그 지명을 벌지지(伐知旨)라 했고  부인은 치술령에서 울다  지쳐 망부석(望夫石)으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그후 제상의 26세손 명천(命天)이 고려(高麗) 때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내고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으로 예원 군(禮原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영해(寧海)를 본관(本貫)으로 하여 제상(堤上)을 시조로 하고

명천(命天)을 중시조(中始祖)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박제상(朴堤上)

생몰년 미상. 신라 상대의 충신. 김제상(金堤上)이라고도 한다. 내물왕 때부터 눌지왕 때까지 활동하였다. ≪ 삼국사기 ≫ 에 박제상은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후손으로 제5대 파사이사금의 5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阿道葛文王), 아버지는 파진찬 ( 波珍飡 ) 물품(勿品)으로 되어 있으나, 이러한 그의 세계(世系)는 거의 신빙성이 없다.

신라는 백제 세력을 견제할 필요에 의해 402년(실성왕 1) 내물왕의 셋째아들인 미사흔 ( 未斯欣 )을 왜에, 412년에는 내물왕의 둘째아들인 복호 ( 卜好 )를 고구려에 파견해 군사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왜와 고구려는 이들 왕자를 인질로 감금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내물왕의 큰아들 눌지왕은 즉위 후 두 동생을 고구려와 왜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군신을 불러 협의하였다. 그 결과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 ( 伐寶靺 ),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 矩 ),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 ( 波老 ) 등 세 사람이 모두 박제상이 그러한 역할을 맡을 역량이 있는 적절한 인물이라고 천거하였다.

당시 박제상은 양산(梁山) 지방의 토호 세력으로서 삽량주간( 賂 良州干)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그는 418년(눌지왕 2) 왕명을 받들어 먼저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해 복호를 구출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귀국한 즉시 왜에 인질로 가 있는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부인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떠났다.

그는 왜에 이르러 마치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해 온 것처럼 속였다. 마침 백제 사신이 와서 고구려와 신라가 모의해 왜를 침입하려 한다고 거짓으로 꾸며 말하였다. 이에 왜가 병을 파견해 미사흔과 박제상을 향도(嚮導 : 길을 인도하는 사람)로 삼아 신라를 침략하고자 하였다.

왜의 침략 세력이 신라를 치러 오는 도중에 박제상은 강구려 ( 康仇麗 )와 협력해 왜병을 속여 미사흔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그 자신은 붙잡혀 왜 왕 앞에 끌려갔다.

왜 왕은 그를 신하로 삼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회유했으나, 그는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결코 왜의 신하가 될 수 없다고 해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마침내 유형에 처해져 불에 태워지는 참형을 받아 죽었다.

이러한 사실이 신라에 알려지자 눌지왕은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그를 대아찬으로 추증하고 부인을 국대부인 ( 國大夫人 )으로 책봉했으며, 둘째 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박문량(朴文良)

신라 자비왕(慈悲王) 때 명신(名臣)인 문량(文良)은 제상의 아들로 천성(天性)이 청렴결백하여  항상 가난  속에서 청빈(淸貧)하게 살았으며 거문고를 즐겼고, 의복(衣服)이 남루하여 백군데나 기운 누더기 옷을  입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478년(자비왕 21) 그가 65세 때 이벌찬의 벼슬에 올라 아첨하는 무리들이 많음을   개탄하여 천재(天災)·치폐(治弊)·처경(處境)·흥인(興人)·지인(知人)·화인(化人) 등 여섯 장(章)의 상소문(上疎文)을 올리니 이 상소문은 너무도 유명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사방에서 떡방아 소리가 요란하자 그의 부인이  "남들은 곡식이 풍부하여 떡방아를 찧는데 우리는 당장 먹을 양식조차 없으니 어찌할꼬."하며  탄식하자 그는 태연하게 "사람에게는 수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매인 것이니 오게 되면 받는 것이요 가게 되면  막을 수 없는 것인데, 부인은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하시오"하며  거문고를 당겨 방아소리를 구성지게 내어 부인을 위로하였다.

이 방아타령은 우식곡(憂息曲)을 대신하여 서라벌에 온통 퍼져 즐겨  불렀다고 하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거문고로 회포를 푸니 이것을 낙천낙(樂天樂)이라 하였다.

 

박윤(朴論)

중시조 명천(命天: 예원군)의 아들 윤(論)이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상주

국(上柱國)에 올라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판병부사(判兵部事)에  이르렀다.

 

박선(朴宣)

윤의 손자 선(宣)이 문종(文宗) 때 진국공신(鎭國功臣)으로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내고 단양부원군(丹陽府院君)에 봉해졌다.

 

 

박용재(朴用才)

용재는 예빈경(禮賓傾)에 증직(贈職)되다.

 

박용량(朴用良)

용량은 은청광록대부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박원계(朴元桂)

관(琯)의 아들 원계(元桂)는 19세로 과거에 급제하여 충숙왕(忠肅王) 때 강릉도존

무사(江陵道存撫使)와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냈다.

 

박경(朴經)

경(經)은 우왕(禑王)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조선이 개국(開國)된 후 대사헌(大司憲)과 완산부윤(完山府尹)을 역임.

 

박창령(朴昌齡)

평양서윤(平壤庶尹)

 

박도(朴渡), 박제(朴濟)

세조(世祖)의 왕위찬탈을 개탄하여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정재 조상치(曺尙治) 등과 함께  은거(隱居)하여 단종복위를 도모했던 도(渡)·제(濟)의 형제가 유명.

 

박치안(朴致安)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진(璡)의 아들 치안(致安)은 당대에 문장(文章)으로 이름을 떨쳐 충절(忠節)의 전통가문(傳統家門)인 영해 박씨를 대효했다. 

 

朴堤上(박제상)의 망부석 설화

 

신라 訥祗王(눌지왕) 高句麗(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王弟)를 구해 온 朴堤上(박제상)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일본에 건너가 또 다른 왕제를 구해 보낸 뒤, 일본에서 잡혀 신라의 신하임을 고집하다 죽음을 당한다.

 

그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을 날마다 가다리다 지쳐 결국 죽어서 望夫石(망부석)이 되고, 그 곳 주민은 애절하게 죽은 부인을 칭송하여 마지않았다.

박제상의 부인은 죽어서 라는 새가 되고 같이 기다리다 죽은 세 딸은 술()이라는 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朴堤上(박제상) 설화

 

1)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은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 보해(寶海 : 삼국사기에는 卜好)를 구하러 변복을 하고 가서, 왕의 추격을 무릅쓰고 같이 탈출하여 무사히 귀국하였다.

 

다음에는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있는 왕제 미해(美海 : 삼국사기에는 未斯欣)를 구하러 가서 신라를 도망해 왔다고 하며 왕의 신임을 얻은 뒤에 미해를 탈출시키고 자기는 붙잡혀서 문초를 받았다.

일본 왕의 문초와 회유로 설득을 함에도 차라리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으며, 차라리 계림의 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이나 녹을 먹지 않겠다. ” 라는 말로 계림 사람임을 주장한 뒤에, 모진 고문으로 발바닥의 껍질을 벗겨진 채 불타 죽었다.

 

2)

신라 제17대 왕인 실성왕(實聖王: 재위기간 402 ∼ 417) 때 이웃 일본(日本)이 화친(和親)의 동맹(同盟)을 맺자는 간계(奸計)를 꾸며 신라의 왕에게 왕자(王子)를 맹약의 보증으로 일본에 보내 줄  것을 청하자 실성왕은 내물왕(奈勿王)의 아들인 미사흔(未斯欣)을 인질로  일본에 보냈다.
그 후 미사흔의 형인 눌지왕(訥祗王)이 즉위하여 일본에  억류된 아우를 그리워하며 신하를  보내어 귀환을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번번이 일본사람들은 거절했다.

 이때 삽량주  태수로 있던  제상(堤上)이 율포(栗浦: 지금의 경주 남양면 하서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구하여 신라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왜왕(倭王)에게 모진 고초를 당한 후 목도(木島)로 귀양보내져서 소살(燒殺)당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눌지왕은 크게  슬퍼하며 제상에게 대아찬의 벼슬을 내리고 그의 충절을  높이 치하했으며, 제상의 부인은 원한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세 딸을 거느리고 동해(東海)가 바라다 보이는 치술령(致述嶺)에 올라가 날마다  통곡하다가 지쳐 죽으니 나라에서는 치술령에  사당(祠堂)을 세우고 제사지내게 하였으며, 제상의 둘째 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맞게 하여 은혜를 갚도록 하였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판서공파

 

항렬자

항렬자

항렬자

57

夏(하)

60

洙(수)

63

程(정)

58

圭(규)

61

鑽(찬)

64

冕(면)

59

錫(석)

62

泳(영)

65

 

 

1985년 인구조사 결과 영해 박씨(寧海朴氏)는 남한(南韓)에 총 5,252가구, 21,29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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