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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태안박씨(朴)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朴(태안박씨)

 

 

본관(本貫): 태안(泰安)

시조(始祖): 박원의(朴元義)

유래(由來):

 

 태안(泰安)은 충청남도(忠淸南道) 태안군(泰安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이다.

 

 태안 박씨(泰安朴氏)는 신라 제 54대 경명왕(景明王)의 세자(世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언침(彦枕)의  13세손 원의(元義)를 기일세(起一世)하여 세(世系)를 계하고 있다.  

<태안박씨족보(泰安朴氏族譜)>에 의하면 그는 고려  때 삼사좌윤(三司左尹)을 지낸 을재(乙材)의  현손(玄孫)으로 광록대부(光록夫)에 올라  상서좌복야를 역임하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태안부원군(泰安府院君)에 봉해졌으며, 9형제 중 다섯째인데, 슬하에 아들이 없어 형(白兄)인 세흥군(世興君) 원효(元孝 : 좌정승을 지냄)의 네째 아들 희문(喜文)을 사자(嗣子)로 맞아 대(代)을 잇게 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원의(元義)를 일세조(一世祖)로 받들고 밀양 박씨(密陽朴氏)에서 분적(分籍)하여 태안(泰安)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으며, 2세 희문(喜文)이  고려조에서 좌정승(左政丞)을 지내고  태원부원군(泰原府院君)에 봉해졌다.

 

가문의 중요 인물

 

박보규(朴甫圭)

희문의 아들 보규(甫圭)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했다.

 

박학(朴謔)

보규의 아들 박학(謔)은 신호위 보승중랑장(神虎衛保勝中郞將)을 역임.

 

박유

보규의 손자 유는 신호위 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지내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박문거(朴文巨)

상호군(上護軍) 인추(仁抽)의 아들 문거(文巨)가  순성부원군(蓴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박비(朴悲)

문거의 아들 박비(悲)가 가문을  중흥시켰다. 송경(松京) 출신으로 고려 말에 문과(文科)에 급제한 비는 고흥 감무(高興監務)  겸 권농병마단련판관(勸農兵馬團鍊判官)을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처자(妻子)를 데리고 청산현 동면  대동리(靑山縣東面大同里)에 은거(隱居)했으며, 조선조에서 신창(新昌), 예산 현감(禮山縣監)에 임명하고 그를  불렀으나 끝내 거절하고 절의를 지켰다.

 

박자유

한편 조선조에서 통례원 봉례(通禮院奉禮)를  지낸 상덕(尙德)의 아들 3형제 중 맏아들 자유가 김해 교수(金海敎授)를 지냈다.

 

박자주(朴自胄)

자주(自胄)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판사(訓練院判事)를 역임했다.

 

박안종(朴安宗)

연천 현감(蓮川縣監)을 지냄.

 

박안방(朴安邦)

청풍군수(淸風郡守)로 유명.

 

박안도(朴安道)

∼ 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의병.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진경(眞卿).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官民)이 흩어짐을 보고, 같은 고향의 뜻 있는 선비인 유함(兪 ○ ) · 이욱 ( 李郁 )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자 많은 사람들이 합세하였다.

모두가 그를 대장으로 추대하려 하였지만 유함에게 미루고 자신은 종사관 ( 從事官 )이 되어 군무를 정돈하며,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면서 군의 사기를 높였다. 이듬해 적들이 서울에서 철수하여 남하하면서 많은 병력을 진주성으로 집결하여, 지난해의 진주성 참패를 복수하려 하였다.

침착하고 지략이 있는 그는 경상우도병사 최경회 ( 崔慶會 ), 충청병사 황진 ( 黃進 ) 등 여러 장군들과 함께 성을 수비하며 방어대책을 세우니 위태로운 시기에 있어서도 모든 일이 안정되어 적의 많은 병력을 막아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중과부적(衆寡不敵 : 많은 적을 소수의 병력으로 대적할 수 없음)으로 10일간의 대격전 끝에 성이 함락되자, 최경회 등 여러 장군들과 함께 남강 ( 南江 )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뒤에 선무공신 ( 宣武功臣 )에 녹훈되고 호조좌랑이 증직되었다. 최경회 · 황진 · 김천일 ( 金千鎰 ) 등과 함께 진주 창렬사 ( 彰烈祠 )에 제향되었다.

 

박시생(朴始生)

안도의 아들 시생(始生)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여 정 구(鄭  逑)의 문인(門人)으로 사림(士林)의  존경을 받았던 민(敏)과 함께 태안 박씨를 대표했다.  

 

 

 

野隱(야은) 朴洪坤(박홍곤)의 효행

 

구덩이가 패인 무릎 자리

 

하늘로부터 타고난 지극한 효성으로, 온 고을에 칭송이 높았던 박 효자는, 지금부터 약 100여 년 전인 18801029일 청도군 풍각면 흑석동의 가난한 박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홍곤(洪坤)이요, 호는 훗날 야은(野 隱)이라 하였다.

 

비록 가난한 농가에 태어났으나,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나라에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신 분들로 엄한 가훈이 계속 이어져 내려왔고,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름난 집안의 후손답게 품성이 순박하였으며, 말과 행동이 바르고, 항상 부모의 곁을 멀리 떠나지 않고 극진히 모셨으며, 또한 웃어른을 공경하고, 형제 사이에 우애도 깊었다.

 

자라면서는 그리 많지 않는 농사를 지으면서 살림을 꾸려나갔는데, 언제나 새벽이면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식사 때면 옆에 모시고 앉아, 수저를 들 어 맛있는 음식을 집어 드리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그가 열 여섯 살 때, 그의 아버지가 매우 중한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그는 크게 근심하였으며, 사방 각처에서 좋다는 약을 두루 구해 와서, 밤을 새워 가며 약을 달여 드렸고, 또 병환의 차도를 알기 위해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고 짐작하였으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정성어린 간호의 보람도 없이, 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마침내 생명이 오늘 내일 하는 위독한 상태에 이르게 되니, 박 효자는 자기의 정성이 모자람을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이제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흘려 넣어 드리기로 결심하였다. 한 번, 두 번.... 성한 손가락이 없을 만큼 수혈을 계속하는 동안,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음인지, 아버지의 병환은 차츰 차도를 보여 마침내는 회복하게 되셨다.

 

그 후, 아버지는 건강하게 오래 사시다가 명을 다하고 돌아가셨는데, 그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해 마지않았고, 밤새도록 어찌나

슬피 우는지 듣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비록 가난하게 산 그였지만, 아버지의 장례는 정성스럽게 예를 다하여 치렀다. 집에서 묘소까지의 거리는 왕복 50 리가 넘었으나, 이를 멀다 않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면,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과 술을 마련하여 성묘를 하였는데,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무리 사나운 바람이 부는 날에도 한결같이 변함이 없었으며, 그의 이 같은 지성스런 성묘는 그가 세상을 뜰 때 까지 계속되어, 이를 본 사람들은 입을모아 그를 대효자라고 찬양하였다.

 

박 효자는 외로이 남으신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 년이 채 안되어 어머니마저 중풍으로 몸져 눕게 되셨다. 온몸이 마비되어 거동을 못하시는 어머니를 뵙자, 그는 다시 자신의 불효를 깊이 탄식하여, 아버지의 병구완 때처럼 온갖 약을 구해 간호하는 한편, 어머니 대변의 맛을 보아 병세의 차도를 헤아려, 효험있는 약을 골라 드시게 했다. 이와 같은 병구완과 정성으로 다행히 생명은 구했으나, 두 손이 마비되어 식사 때 수저를 들 수 없게 되어, 그는 식사 때마다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했다.

 

어머니가 드시기 전에 음식이 어머니 구미에 맛있는가를 알아보고서는, 자기가 수저를 들어 음식을 먹여 드렸으며, 또 일일이

밥맛이 어떠합니까?”

반찬이 구미에 맞습니까?”

하고 여쭈어 어머니가 맛있어 하시는 것을 유심히 살펴서 다음 날에 대비하였다. 이처럼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는 10여 년을 더 사셨고, 그의 식사 시 중은 어머니가 세상 떠나는 날까지 한결같이 계속되었다.

 

그 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어버이를 다 잃은 그는 몹시 비통해 하며, 사흘 밤낮을 끼니도 잊은 채 슬퍼하였다. 살아 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지 못함을 애통해 하는,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모두 눈물과 탄복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의 장례도 정성스레 치르고, 10여 리나 떨어진 산소를 초하루, 보름이면 꼭꼭 성묘했는데, 묘소에서 예를 올릴 때는 사모의 정에 겨워 언제나 눈물이 비 오듯 하였다. 그는 이처럼 부모님 산소를 종신 성묘하였는데, 얼마나 부지런히 오가고 했던지 집에서 묘소로 왕래하던 자리가 길이 되어버렸고, 그가 엎드려 절하던 곳은 잔디도 말라 움푹 구덩이가 패었다 한다.

 

이와 같은 박 효자의 행실을 칭송하여 훗날, 사람들은 하늘이 내신 효자요 후세의 본보기.’라고 입을 모았다.

박 효자의 부인 허씨도 또한,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여 효부라는 칭찬이 자자 했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영정을 방안 깨끗한 자리에 모셔 놓고, 아첨저녁으로 향을 피워 절을 드렸으니, 고을 사람들은,

과연, 효자 집안에 효부가 난다.” 라고 칭송하였다.

박 효자의 동생 성곤(性坤)도 또한 형 못지 않는 효자였는데, 사람들은 말하기를,

선하고 어진 행동과 효도에 있어서 형제가 똑같아 우열을 가리지 못한다.” 하고 찬양하였다. 그런데, 그 동생이 어느 해에 무거운 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자, 박 효자는 산에 들어가 천지신명께 동생의 병이 낫도록 백일 기도를 정성껏 드려, 마침내 완쾌되도록 했는데, 사람들은

그 우애가 하늘에 닿았음이다. ” 하고 찬양하기를 마지 않았다.

그의 갸륵한 효행이 널리 세상에 알려지자, 향교와 대성 학원에서는 표창과 포양문을 내려 그 효도를 찬양했으며, 그 후 일흔 다섯에 그가 세상을 뜨자, ‘채 헌식이란 분은 효행전을 지어 그를 기리고, ‘이 기원박 효자 실기를 써서 하늘이 낳은 효자요, 백세의 본보기가 될 그의 효행의 그윽한 향기를 후세에 남겼다.

 

 

출전청도군 풍각남부초등학교 교감

참고 문헌 大韓忠義孝烈錄, 朴孝子實錄, 孝烈行誌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항렬자

항렬자

항렬자

22

榮(영),煥(환)

25

浩(호)

28

 

23

衡(형),載(재)

26

東(동)

29

 

24

錫(석)

27

熙(희),燦(찬)

30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태안 박씨(泰安朴氏)는 남한에 총 1,079가구, 4,49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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