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朴(태인박씨)
본관(本貫): 태인(泰仁)
시조(始祖): 박언상(朴彦祥)
유래(由來):
태인(泰仁)은 전라북도(全羅北道) 정읍군(井邑郡)에 속해있는 지명임.
태인 박씨(泰仁朴氏)는 신라 제 54대 경명왕(景明王)의 세자(世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언침(彦枕)의 8세손으로 고려조에서 도평의사(都評議事)를 지내고 밀
성부원군(密城府院君)에 봉해진 언상(彦祥)을 중조(中祖)로 하며, 그의 8세손 거인(居仁)이 공민왕(恭愍王) 때 소감을 역임한 후 화(禍)을 입고 인의현(仁義縣)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 살게 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거인(居仁)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태인(泰仁)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박연생(朴衍生)
연생(衍生 : 사정 덕명의 아들)이 조선 단종조(端宗朝)에서 충무위 대호군(忠
武衛大護軍)을 역임.
박문거(朴文巨)
문과(文科)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한 문거(文巨)는 봉상대부(奉常大夫)로 총랑(摠郞)을 거쳐 지곡주사(知谷州事)를 지냈다.
박수량(朴守良)
1491(성종 22) ∼ 1554(명종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태인 ( 泰仁 ). 자는 군수(君遂). 전라남도 장성 출신. 문아(文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손(賢孫)이고, 아버지는 종원(宗元)이며,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김개 ( 金漑 )의 문인이다.
1513년(중종 8) 진사에 합격하고, 이듬 해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광주향교 ( 廣州鄕校 )의 훈도로 취임했다가, 다음 해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로 옮겼다. 이어 전적 ( 典籍 ) · 예조좌랑 · 정언 ( 正言 ) · 충청도도사 등을 거쳐, 1522년에 지평 ( 持平 )이 되었다.
1525년 양친을 봉양하기 위해서 고부군수로 나갔다. 1528년에 부친상을 치르고 이어 헌납 ( 獻納 ) · 장령 ( 掌令 ),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 · 사도시부정(司 歸 寺副正) 등을 역임하였다. 1531년 어머니 봉양을 위해 사성 ( 司成 )을 사퇴하고 보성군수로 나갔다가, 이듬 해 사예 ( 司藝 )가 되었다. 이어 사성 · 내섬시정(內贍寺正) · 군기시정(軍器寺正) 등을 역임하였다.
1534년 함경도 경차관 ( 敬差官 )이 되어 지방 관서를 순시하던 중, 안원보(安原堡) · 권관 ( 權管 ) · 전주남(全周男)이 야인들에게 임의로 우마(牛馬)를 준 사실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다가 투옥되었다. 1536년 승문원판교 겸 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고, 이어 통정대부로 승진해 병조참지 ·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수찬관 ( 修撰官 )을 지내고 좌승지로 옮겼다. 이어 가선대부로 승진해 호조참판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나주목사로 기용되어 찰리사 ( 察理使 )를 겸했고, 전위사(餞慰使)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전송하였다. 1537년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가 이어 한성부판윤 · 동지중추부사 · 공조참판 ·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39년 오위도총부부총관 · 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또 어머니 봉양을 위해서 담양부사로 나갔다가 1542년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벼슬을 사양하다가 1546년(명종 1)에 다시 상호군 ( 上護軍 )에 나아가 곧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 중종실록 ≫ · ≪ 인종실록 ≫ 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자헌대부로 승진해 지중추부사 · 한성부판윤 ·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550년 우참찬에 임명되어 지경연의금춘추관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하였다. 이듬 해에는 경기도관찰사를 겸임했고 숭록대부로 올랐다. 1552년에 우참찬을 비롯, 호조판서 ·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1554년에 지중추부사로 있다가 죽었다.
주세붕 ( 周世鵬 )과의 교유가 깊었으며 사람됨이 간중신밀(簡重愼密 : 곧으면서 신중함)하고 예법을 잘 지키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30여 년의 관리 생활에서도 집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렴결백해 청백리에 뽑혔다. 시호는 정혜(貞惠)이다.
박취극(朴就克), 박재화(朴再華), 박세언(朴世彦)
판관(判官)을 지냄.
박내용(朴乃容)
중추부사(中樞府事)
박순용(朴順容)
문과에 급제하여 참판(參判)을 역임.
박균종(朴均宗)
비서감정(秘書監正)
박동욱(朴東旭), 박우용(朴雨容)
좌승지(左承旨)
박지춘(朴知春)
중추부사(中樞府事)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세
|
항렬자
|
세
|
항렬자
|
세
|
항렬자
|
27
|
容(용)
|
30
|
來(래)
|
33
|
永(영)
|
28
|
均(균)
|
31
|
燮(섭)
|
34
|
相(상)
|
29
|
求(구)
|
32
|
在(재)
|
35
|
熙(희)
|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태인 박씨(泰仁朴氏)는 남한에 총 140가구, 58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