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양근김씨)
본관(本貫): 양근(陽根)
시조(始祖): 金仁贊(김인찬)
유래(由來)
始祖(시조) 金仁贊(금인찬)의 字(자)는 義知(의지), 號(호)는 義巖(의암),諡號(시호)는 忠民(충민)이다.
그는 전서공(典書公) 김존일(金存一)의 네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나 1376 (우왕2) 북청(北靑) 천호(千戶)가 되었고, 1388년(우왕14) 밀직부사(密直副使;정령을 출납하던 밀직사의 3품)에 올라, 이성계(李成桂)를 따라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하여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랐다.
1392년(공양왕 4) 조선개국의 공(功)으로 보조1등공신(補祚一等功臣)에 녹훈(錄勳)되고 중추원사(中樞院使).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 동지절제사(同知節制使)등을 역임하고 익화군(益和君)에 봉해져, 양근(陽根)을 식읍(食邑)으로 하사 받아 후손들은 金寧金氏(김녕김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양근(楊根)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후손들로는 김인찬(金仁贊)의 아들 김귀룡(金貴龍)이 의금부사(義禁府事;왕명으로 중죄인을 추국하던 의금부의 벼슬)를 지냈으며, 그외 학자(學者)로 이름난 김응립(金應立)과 부호군(副護軍, 5위에속했던 종4품 장군)을 지낸 김상관(金祥寬)이 유명했고, 명종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한 김지희(金之禧)가 군수(郡守;종4품수령)를 지냈다.
양근(楊根)은 경기도 양평군 일원의 옛 지명으로, 940년(태조왕건 23)에 양근(陽根)으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9)에 광주(廣州)의 속현으로 병합하였다가, 1175년(명종5)에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257년(고종44)에 영화(永化)라 개칭했고, 1269년(원종10)에 익화현(益和縣)으로 개칭되었다.
1466년(세조12)에 양근군이 되어 조선시대동안 유지되었으며 1896년 경기도 양근군이 되었다. 1908년 지평군(砥平郡)과 합쳐 양평군(楊平郡)이 되었고 1979년에 양평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훈(金勳)
1651년(효종2) 별시(別試) 무과(武科)의 병과(丙科)에 급제하는 등 1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김록지(金祿只)
인조 15년(1637) 별시에서 병과에 급제하였다.
김대길(金大吉)
무과급제자로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김금쇠(金金釗)
무과급제자로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金相漢(김상한)
무과급제자로 숙종21년(1695) 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金任寅(김임인)
무과급제자로 인조21년(1637) 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金京立(김경립)
무과급제자로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金從男(김종남)
무과급제자로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金泰興(김태흥) (1638 戊寅生)
무과(武科) 급제자로 顯宗7年(1666) 別試 을과(乙科)에 합격하여, 조선 고종 때 관령(官令)을 받아 압록강변 국경일대에 있는 호인(胡人) 및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락상태를 조사해서 강북일기(江北日記)를 편찬하였다.
金相根(김상근)
별시(別試) 무과급제자로 숙종12년(1686) 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金勳(김훈) (1630 庚午生)
무과급제자로 효종2년(1651) 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行列字(항렬자)
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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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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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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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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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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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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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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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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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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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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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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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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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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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在)
진(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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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鐘)
석(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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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洪)
영(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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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植)
락(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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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容)
연(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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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圭)
채(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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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會)병(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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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사에 의하면 양근김씨는 1985년에는 1,211가구 5,051명, 2000년에는 1,730가구 5,357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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