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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삼척박씨(朴)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朴(삼척박씨)

 

 

본관(本貫): 삼척(三陟)

시조(始祖): 박원경(朴元慶)

유래(由來):

 

삼척(三陟)은 강원도(江原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임.

중조 박원경(朴元鏡)은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으로 고려의 문신. 본관은 삼척, 신라 속함대군(速咸大君)의 후예,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 권지교서정자(權知敎書正字), 개성부윤(開城府尹), 사농시사(司農侍事)등의 벼슬을 지냈다. 공로가 있어 삼척군 대광(三陟君大匡)에 책봉되어 삼척 박씨(三陟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원경의 아들 준제는 고려 때 참지정사를 지냈고 손자 인린은 중직대부를, 증손 방실은 조선 때 군수를 역임하였다. 특히 환은 성종 때 등과 하였는데, 재능이 특출하고 학문과 덕망을 겸비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효자문이 세워졌다. 성종(成宗)때 등과(登科)하여 청주병마절제사(淸州兵馬節制使)를 지낸 산두(山斗)와 중종(中宗)때 과거에 급제하고 승사랑(承仕郞)으로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역임한 응성(應星)이 유명했으며, 현좌(賢佐)는 광해군(光海君)때순충보조공신(純忠補助功臣)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증직(贈職)되고 척흥군(陟興君)에 봉해졌다.

한편 1600(선조 3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여량(汝樑)은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겸 춘추관(春秋館)의 기사관(記事官)을 거쳐 예··3()의 좌랑(佐郞)과 사헌부지평(司憲府 持平) 등을 지내고, 광해군(光海君)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이조 판서(吏曹判書) 겸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으로 증직되어 척성군(陟城君)에 봉해졌으며 세자 좌빈객으로 세자를 교육시키도 하였다. 윤종(胤宗)은 용양위부호군을 역임했고, 이백(而栢)은 인조(仁祖)때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어 봉직랑(奉直郞)으로 상의원첨정(尙衣院僉正)을 지냈다.

그밖의 인물로는 숙종(肅宗)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른 익진(翊震)과 직제학(直提學) 진경(震卿)이 유명했고, 창기(昌基)는 철종조(哲宗朝)에서 효행(孝行)으로 이름을 떨쳐,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두문불출(杜門不出)했던 병택(炳澤)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이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삼척박씨 가문을 빛냈으며, 여러 요직에 등용되어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강원 동해시 추암동 과동마을 산 181번지(. 삼척군)에 소재한 오류골[五柳洞] 뒷편 야산인 신라고분유적지내에 위치하고 있던 무덤[과동고분(용묘)]으로, 이 고분은 옛부터 세거주민들에 의해 '말무덤', '큰무덤'으로, 지방읍지인 척주지(陟州誌).진주지(眞珠誌).삼척군지(三陟郡誌)등의 기록에는 '과동고축(科洞古塚')', '룡묘(龍墓)', '삼척군박원경묘(三陟朴元慶墓)'로 전해져 오던 무덤으로 삼척박씨 후손( 박만금)이 시조 박원경(1361 ~ ?)의 행적과 묘소를 찾던 중 1980년대에 이 고분을 시조묘로 발견하였는데, 당시 무덤의 분구는 직경 6m, 높이 2m 정도로 규모가 거대하였다고 한다.

1980년 말경에 삼척박씨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개축하고 묘비 및 문인석, 망주석, 장명등, 상석 등의 석물들을 갖추어 관리해오다 1991년에 이장하여 현재 묘는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가성에 신단비를 세워 매년 1010일 향사한다.

출전<三陟朴氏 正憲公派 宗親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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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삼척박씨

[ 三陟朴氏 ]

요약 강원도 삼척(三陟)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시조는 속함대군의 후손이며 고려 공민왕 때의 좌복야(左僕射)인 박원경(朴元慶)이다. 그의 아들 박준제(朴準提)참지정사(參知政事), 증손 박방실(朴邦實)은 군수, 후손 박현좌(朴賢佐)국자감의 관직을 역임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척박씨 [三陟朴氏]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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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박씨(三陟朴氏)

강원도 삼척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개설

삼척박씨(三陟朴氏)는 삼척군대광(三陟君大匡)에 책봉된 박원경을 시조로 하고 있다.

 

연원

박원경은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고, 이후 권지교서정자(權知敎書正字), 개성부윤(開城府尹), 사농시사(司農侍事) 등의 벼슬을 지냈다. 공로가 있어 삼척군대광(三陟君大匡)에 책봉되어 삼척박씨(三陟朴氏)의 시조가 되었다.박원경의 아들 박준제는 고려 말 참지정사를 지냈고 손자 박인린은 중직대부를, 증손 박방실은 조선 때 군수를 역임하였다. 특히 박환은 성종 때 등과하였는데, 재능이 특출하고 학문과 덕망을 겸비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효자문이 세워졌다. 성종(成宗) 때 등과(登科)하여 청주병마절제사(淸州兵馬節制使)를 지낸 박산두(朴山斗)와 중종(中宗) 때 과거에 급제하고 승사랑(承仕郞)으로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역임한 박응성(朴應星)이 유명했으며, 박현좌(朴賢佐)는 광해군(光海君) 때 순충보조공신(純忠補助功臣)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증직(贈職)되고 척흥군(陟興君)에 봉해졌다.

입향 경위

삼척박씨 시조 박원경은 1365(공민왕 14) 밀직부사로 상서에 오르고 삼척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고려가 망하자 지리산에 은거하여 후진양성에 진력했다.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삼아 본관을 삼척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척박씨 [三陟朴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가문의 중요 인물

 

박산두(朴山斗)

성종(成宗)때 등과(登科)하여  청주병마절제사(淸州兵馬節制使)를 지냄.

 

박응성(朴應星)

중종(中宗)때 과거에 급제하고 승사랑(承仕郞)으로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역임.

 

박현좌(朴賢佐)

현좌(賢佐)는 광해군(光海君)때순충보조공신(純忠補助功臣)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증직(贈職)되고 척흥군(陟興君)에  봉해졌다.

 

박여량(朴汝樑)

1554(명종 9)∼1611(광해군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삼척(三陟). 자는 공간(公幹), 호는 감수재(感樹齋). 함양 출신. 아버지는 승사랑 ( 承仕郎 ) 현좌(賢佐)이며, 어머니는 합천이씨(陜川李氏)로 충순위 ( 忠順衛 ) 숙(淑)의 딸이다.노상(盧祥)의 문인이다.

1600년(선조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거쳐, 예조·병조·형조의 낭관과 북청판관에 이어 1608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 郭再祐 )가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격문을 돌려 많은 지원을 하였고, 정유재란에는 의병으로 황석(黃石)에 들어가 여러 고을에 통문을 돌려 군량을 조달하였다.

평생을 성리학과 ≪대학≫의 무자기(毋自欺 : 자기자신을 속이지 말 것)에 심혈을 기울였고, 정온 ( 鄭蘊 )· 오장 ( 吳長 )· 박이장 ( 朴而章 )·박성인(朴成仁) 등과 교유하였다. 1613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감수재문집≫이 있다.

 

박윤종(朴胤宗)

윤종(胤宗)은 용양위부호군을  역임했다.

 

박이백(朴而栢)

이백(而栢)은 인조(仁祖)때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어 봉직랑(奉直郞)으로 상의원첨정(尙衣院僉正)을 지냈다.

 

박익진(朴翊震)

숙종(肅宗)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름.

 

박진경(朴震卿)

직제학(直提學)

 

박창기(朴昌基)

창기(昌基)는 철종조(哲宗朝)에서 효행(孝行)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병택(朴炳澤)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울분을 참지 못해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일제에 항거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삼척  박씨(三陟朴氏)는 남한(南韓)에 총 988가구,  4,0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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