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il : juntonggahun@naver.com
>> 한국의 성씨


진주류씨(柳)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진주류씨)

 

 

본관(本貫): 진주(晋州)

시조(始祖): 류정(柳挺)

유래(由來):

 

진주 류씨(晋州柳氏)의 시조(始祖) 류정(柳挺)은 고려조(高麗朝), 금자광록대부(金紫光 祿大夫)로 중서령(中書令)을 지내고 좌우위 상장군(左右衛上將軍)에 올라 진강부원군(晋康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진주(晋州)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界)를 이어오고 있다.

 

가문의 중요 인물

 

류숙

2세 숙이 보승중랑장(保勝中郞將)으로 진녕부원군(晋寧府院君)

 

류돈식(柳敦植)

3세 돈식(敦植)은 상장군(上將軍)에 올라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

 

류홍림(柳洪林)

4세 홍림(洪林)은 평장사(平章事)를 거쳐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로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에 봉해졌다.

 

류부

홍림의 아들 부는 진흥부원군(振興府院 君)

 

류간

홍림의 손자 간은 진성군(晋城君)에 봉군되었으므로 6()가 크게 현달하여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

 

류문통(柳文通)

11세손으로 조선 세조(世祖)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문통(文通)이 사간(司諫)을 거쳐 상주 목사 (尙州牧使)를 지냈으며청천유고(靑川遺稿)를 저술했다.

 

류인귀(柳仁貴)

1495(연산군 1) 문과에 인귀(仁貴)는 정언(正言)에 올라 폐비윤씨(廢妃尹氏)의 추숭(追崇)을 반대하다가 회덕(懷德)으로 장류(杖流)되었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 대사성(大司成)에 올랐다.

 

류희령(柳希齡)

1480(성종 11)1552(명종 7).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원노(元老자한(子罕), 호는 몽암(夢菴몽와(夢窩몽노(夢老몽초(夢草). 공조참판 종식(宗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봉교를 지낸 문통(文通)이고, 아버지는 예조참의 인귀(仁貴)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현감 장생(長生)의 딸이다. 송인수 ( 宋麟壽 )는 그의 문인이다.

1501(연산군 7) 진사가 되고, 1516(중종 1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그 해에 권지교서관 부정자가 되었고, 예문관검열, 대교·봉교가 되었고, 이듬해 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19년 남곤 ( 南袞 ) 등이 일으킨 기묘사화 때 작은아버지 인숙(仁淑)이 화를 당하자 관직을 떠나 문산(文山 : 지금의 文義)에 내려가 은거하였다.

그러나 1520년 다시 정언에 제수되었고, 이 후 이천부사(伊川府使)와 대구부사를 역임하였으며, 1542년 성절사로 북경에 다녀온 뒤 1543년 호조참의에 제수되었다. 1545(명종 즉위년)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금산으로 옮겨져 유배지에서 죽었다.

그는 표제음주동국사략 標題音注東國史略12권과 대동시림 大東詩林, 대동연주시격 大東聯珠詩格·송시정운 宋詩正韻·조종시률 祖宗詩律을 편찬하였다.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서 내직에 있을 때에는 서슴지 않고 직간을 올려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였으며, 지방관으로 있을 때에는 인정을 펴는 데 주력하였다.

또한, 문필에도 재능이 있었으며, 특히 시를 잘 지어 성절사로 북경에 갔을 때에도 그 곳에서 시로 이름을 떨치고 돌아왔다고 한다. 문집으로 몽암집22책이 있다.

 

 

류우(柳藕)

1473(성종 4)1537(중종 32). 조선 전기의 학자. 자는 양청(養淸), 호는 서봉(西峯). 사섬시정(司贍寺正) 자빈(自濱)의 아들이다. 김굉필 ( 金宏弼 )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04(연산군 10) 갑자사화로 스승이 죽음을 당한 뒤에는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연구와 후학교육에 전심하였다. 그는 대학을 학문의 골격으로 삼고 6경과 3서를 주요과목으로 하여 제자서에까지 나아갔다.

특히, 주역에 정밀하였고, 천문· 복서 ( 卜筮 음률·서화에도 정통하였다. 의술도 깊이 연구하여 어머니의 숙환에 직접 의약을 조제하여 치료하기도 하였다. 청빈한 가운데 우의를 잃지 않았고, 항상 남의 장점만을 말하고 나쁜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그는 일찍이 연못이 말라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소식을 듣고 큰 재난이 닥칠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해부터 몇 년 동안 흉년이 계속되어 대기근이 일어나자 그 구제에 진력하였다

 

류조인

우의 아들 조인은 임진왜란 때 왕을 평양(平壤)으로 호종(扈從)하여 세자 익위사 익위(世子翊衛司翊衛)가 되었다.

 

류진(柳縝)

조의(祖誼)의 아들 진()이 명종(明宗) 때 등과(登科)하여 형조(刑曹)의 좌랑(佐郞)과 정랑(正郞)을 거쳐 태천(泰川), 단천, 평창(平昌)등지의 군수를 지냈다.

 

류근(柳根)

1549(명종 4)1627(인조 5).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회부(晦夫), 호는 서경(西坰). 팽수(彭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이고, 아버지는 진사 영문(營門)이며, 어머니는 안세언(安世彦)의 딸이다. 진사 광문(光門)에게 입양되었다. 황정욱 ( 黃廷彧 )의 문인이다.

1570(선조3) 생원·진사 두 시험을 거쳐 1572(선조 5) 별시 문과에 장원하고, 1574년에 사가독서 ( 賜暇讀書 )를 하였다. 1587년 이조정랑으로서 문신 정시(文臣庭試)에 다시 장원하였다. 이 해 일본의 중 겐소(玄蘇)가 사신으로 오자, 문장이 뛰어났으므로 선위사 ( 宣慰使 )에 특임되어 그를 맞이해 대접하였다.

1591년 좌승지로서 건저문제 ( 建儲問題 )로 정철 ( 鄭澈 )이 화를 당할 때 일파로 몰려 탄핵을 받았으나, 문재(文才)를 아끼는 선조의 두둔으로 화를 면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임금을 호종했으며, 예조참의·좌승지를 거쳐 예조참판에 특진되었다.

1593년 도승지로 경성안무사(京城安撫使)가 되어 민심을 수습, 이어 한성부판윤에 올라 사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그리고 1597년 운향검찰사(運餉檢察使)로 명나라에서 들어오는 군량미의 수송을 담당하였다. 이 밖에도 임진왜란으로 인한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많은 일을 하였다.

1601년 예조판서가 되어 동지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고, 1603년에는 충청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온조묘(溫祚廟)를 다시 세울 것을 건의하였다. 1604년 호성공신 ( 扈聖功臣 ) 3등에 녹훈되고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에 봉해졌다. 대제학에 이어 좌찬성이 되었다.

광해군 때 대북파가 국경을 농단하고 1613(광해군 5) 폐모론까지 일어나자, 괴산으로 물러나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아 관작이 삭탈되었다가 1619년 복관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기용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627년 정묘호란 때 강화에 왕을 호종하던 중 통진에서 죽었다. 괴산의 화암서원 ( 花巖書院 )에 제향되었다. 문집으로 서경집을 남겼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류구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 구는 근(의 손자로서 정사삼등공신(靖社三等功臣)으로 진주군(晋州君)에 봉해졌다.

 

류명견(柳命堅)

사인(舍人) ()의 아들 명견(命堅)은 숙종 때 김석주(金錫胄), 김익훈(金益勳)에 등용되어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냈다.

 

류명천(柳命天)

명천(命天)은 숙종 때 예조 판서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냈으나 장희재(張希載)와 공모하여 인현왕후(仁顯王后)를 모해하려 했다는 무고로 아우 명현(命賢:이조 판서)과 함께 지도(智島)에 귀양 갔다가 돌아와 벼슬의 뜻을 버리고 향리(鄕里)로 돌아갔다.

 

류도삼(柳道三)

찰방(察訪) 천근(天根)의 아들 도삼(道三)은 인조(仁祖) 때 알성문과에 급제하고 단천 군수(端川郡守)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下賜) 받았다.

 

류진혁(柳進赫)

시문(詩文)으로 명성을 떨침.

 

류광주(柳光周)

이조참판

 

류원문(柳遠聞)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柳濱(유빈) 선생의 일화.

 

호랑이가 잡아준 묘터

晋州(진주) 柳氏(유씨) 2세조이신 직제학공께서는 엄동설한(嚴冬雪寒)에 개경에서 별세하시니 마땅한 幽宅(유택)을 정하지 못하여 공의 아들 영흥공께서 깊은 시름에 잠겼을 때 큰 호랑이 한 마리가 홀연히 나타나서 입을 크게 벌리고 서 있었다.
公(공)께서는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의연히
「네가 날 잡아 먹으려 하느냐?」하고 묻자 호랑이는 머리를 가로 저으며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머리를 내 밀기에 자세히 보니 호랑이 목에 큰 비녀가 가로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서슴지 않고 손을 호랑이 입속에 넣어 비녀를 꺼내주었다.

호랑이는 꼬리를 치며 좋아하더니 허리를 굽히며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여 영흥공께서 호랑이 등에 오르자 호랑이는 밤새 千里(천리) 길을 달려 안동 부근 용두산 언덕에 멈추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든 산이 눈으로 덮여 雪山(설산) 雪原(설원) 임에도 호랑이가 멈춘 곳은 눈이 하나도 없고 찬바람도 없이 따뜻하고 평안한 곳이었다.

공께서는 아! 호랑이가 명당 터를 잡아주려고 나를 등에 업고 밤새 천릿길을 달려왔음을 깨닫자 어느 사이에 호랑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공은 호랑이가 정해준 이곳은 하늘이 정해준 명당이라 여기시고 개경에서 천릿길인 이곳까지 運柩(운구)하여 先親(선친)의 葬禮(장례)를 모시게 되었다.

장례 후 墓下(묘하)에 초막을 짓고 侍墓(시묘)를 하다가 어느 날 아침 건너편 산중턱을 바라보니 전에는 없던 “범의 형상을 닮은 큰 바위”가 솟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 저 바위는 며칠 전 先親(선친)의 幽宅(유택)을 마련해 주려고 나를 등에 업고 천리 길을 달려와서 기진맥진하여 돌아가다가 저 산중턱에서 죽어 바위가 되어서도 선친과 나를 지키고 있는 고마운 호랑이임을 알게 되었다.

은혜를 보답하려는 호랑이는 善政(선정)을 베푼 직제학공과 효성이 지극한 영흥공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하고 죽어서도 두 선조님을 지켜주니 자손은 날로 번창 하여 학덕이 높고 벼슬이 높은 분이 수없이 태어나서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조상을 追遠(추원)하며 동기간에 和睦(화목)하니 남들이 名門(명문)(名門)이라 하였다.

그 후 호랑이 형상인 바위는 “범바위(虎巖)”이라 불리게 되었고 직제학공의 묘소에서 오랫동안 시묘살이를 한 영흥공의 지극한 효성이 알려지자 이 山野(산야)와 洞里(동리)를 영흥공의 이름을 따 柳濱(유비)골이라 불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흥공께서는 太宗(태종)대왕과 동방진사(同榜進士)로서 영흥대도호부사를 지내시면서 임금에게 충성하고 滅私奉公(멸사봉공)하신 開國功臣(개국공신)이시다. 별세하시어 유빈골에서 멀지 않은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에 禮葬(예장)하였다.

생전에 미진한 효성, 사후에도 至近(지근)에서 先親(선친)을 追遠(추원)하며 영민하시니 鍾陵(종릉)이라 한다. 죽기를 마다 않고 죽어서까지 은혜를 갚는 호랑이는 우리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항렬자

항렬자

항렬자

24

(),()

29

(),()

()

34

(),()

()

25

()

30

(),()

()

35

(),()

26

(),()

31

(),()

()

36

(),()

27

(),()

32

(),()

()

37

(),()

28

(),()

33

(),()

()

38

(),()

 

1985년 인구조사 결과 진주 류씨(晋州柳氏)는 남한에 총 17,667가구, 72,82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 목록
번호 제 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225 고령 박.jpg 고령박씨(朴) 청남 14-08-27 4357
224 경주 박.jpg 경주박씨(朴) 청남 14-08-27 3209
223 강릉 박.jpg 강릉박씨(朴) 청남 14-08-27 2745
222 여흥 민.jpg 여흥민씨(閔) 청남 14-08-26 3732
221 제령 미.jpg 재령미씨(米) 청남 14-08-26 2281
220 남평 문.jpg 남평문씨(文) 청남 14-08-26 3606
219 광령 묵.jpg 광령묵씨(墨) 청남 14-08-26 2593
218 사천 목.jpg 사천목씨(睦) 청남 14-08-26 2819
217 광주모씨(毛) 청남 14-08-26 2006
216 함평 모.jpg 함평모씨(牟) 청남 14-08-26 3425
215 서척 명.jpg 서촉명씨: 연안명씨(明) 청남 14-08-26 4002
214 신창 맹.jpg 신창맹씨(孟) 청남 14-08-26 4653
213 충주매씨(梅) 청남 14-08-26 2332
212 강화만씨(萬) 청남 14-08-26 2202
211 영평마씨: 열산마씨(麻) 청남 14-08-26 2504
210 목천 마.jpg 목천:장흥마씨(馬) 청남 14-08-26 4071
209 풍산 류.jpg 풍산류씨(柳) 청남 14-08-26 4846
진주 류.jpg 진주류씨(柳) 청남 14-08-26 3743
207 전주 류.jpg 전주류씨(柳) [1] 청남 14-08-26 5184
206 문화 류1.jpg 문화류씨(柳) [1] 청남 14-08-26 4782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