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頓(목천돈씨)
본관(本貫): 목천(木川)
시조(始祖):
유래(由來):
돈씨(頓氏)는 중국 창오(蒼梧 : 지금의 광서성 창오현)출신으로 한(漢)나라 때 효자로 유명했던 돈기(頓琦)의 후예(後裔)로 전해진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하고 고려를 창업하자 목천(木川)지방의 백제 유민들이 순응(順應)하지 않고 자주 소란(騷亂)을 일으켜 태조가 그 곳 사람들에게 동물의 이름으로 돈(頓), 상(象), 우(牛), 장(獐)등의 성(姓)을 가지게 했는데, 그 후손들이 돈(頓), 상(尙), 우(禹), 장씨(張氏)로 개성(改姓)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돈씨가보(頓氏家譜)]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조의 명성(名姓)인 을씨(乙氏)가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 때부터 을지씨(乙支氏)로 개성(改姓)하였다가, 고려 인종(仁宗) 때 묘청(妙淸)의 난(亂)에 의병장(義兵將)으로 서경(西京)을 수복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을지수(乙支遂). 을지달(乙支達), 을지원(乙支遠)이 돈산백(頓山伯)에 봉해지 고 돈뫼(頓山)를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아 그 곳에서 누대를 세거(世居)해 오면서 성(姓)을 돈씨(頓氏)로 개성하였다 고 하며, 임진왜란 때의 조방장(助防將)인 돈정신(頓貞臣)은 을지수(乙支遂)의 17대손이라고 한다.
그러나 묘청(妙淸)의 난(亂) 때 공을 세웠다는 을지수, 을지달. 을지원에 대한 기록이 사기(史記)에 정확하게 전하지 않고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은 돈뫼(頓山)의 지명이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확성이 없다고 본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 총 22가구, 1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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