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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두릉두씨(杜)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두릉두씨)

 

 

본관(本貫): 두릉(杜陵)

시조(始祖): 두경녕(杜慶寧)

유래(由來):

 

 

두릉(杜陵)은 중국에 있는 지명으로 현재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두씨(杜氏)의 연원(淵源)은 중국 경조(京兆: 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서 시작되었으며, ()나라 태종(太宗) 때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낸 두경녕(杜慶寧)을 시조(始祖)로 한다.

 

두릉두씨세보(杜陵杜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송() 진종(眞宗)의 왕위 계승(王位繼承) 문제에 관한 상소(上疏)로 직간(直諫)하다가 진종에게 미움을 받아 소주 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자 아들인 중서사인(中書舍人) 지건(之建)과 우습유(右拾遺) 지방 형제를 데리고 정처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서 1004(고려 목종 7) 궁지현(宮池縣:지금의 전북 김제군 만경면)에 표착(漂着)하여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 목종(穆宗)은 두경녕(杜慶寧)에게 우사관(右司官)의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宮池縣)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한 후 두릉군(杜陵君)에 봉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두씨(杜氏)의 문호(門戶)가 열리게 되었고, 후손들은 두경녕(杜慶寧)을 시조로 하여 봉군지(封君地)인 두릉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두수총(杜遂寵)

지건(之建)의 아들 수총(遂寵)이 고려조(高麗朝)에서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대호군(大護軍)에 올랐다.

 

두방(杜邦)

지건의 손자(孫子)인 방()1122(예종 17)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러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

 

두경승(杜景升)

1197(신종 즉위년). 고려 후기의 무신. 전주 만경현(萬頃縣) 사람으로 만경두씨(萬頃杜氏)의 시조이다. 학식은 없었으나 성품이 순후하고 가식이 적으며 용기와 힘이 셌다.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 ( 隊正 )이 되어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 : 衛士의 하나)이 되었다. 정중부 ( 鄭仲夫 )의 난 때 무인들이 남의 재물을 약탈했으나 홀로 전문(殿門)을 지키면서 남의 재산을 범하지 않았다.

명종 초 산원 ( 散員 )이 되었다가 이의방 ( 李義方 )의 추천으로 내순검군지유(內巡檢軍指諭)가 되었으며, 뒤이어 낭장 ( 郎將 )이 되었다. 1173(명종 3) 김보당 ( 金甫當 )이 반란을 일으키자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가 되어 인심을 수습하고 뒤이어 장군이 되었으며, 서북면병마부사가 되어 창주(昌州 : 지금의 평안북도 창성)를 진수하였다.

이 때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반란을 일으키자 개성으로 후퇴하였다가 다시 동로가발병마부사(東路加發兵馬副使)가 되어 고산(孤山선주(宣州 :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맹주(孟州 : 지금의 평안남도 맹산무주(撫州 : 지금의 평안남도 덕천) 등지에서 무공을 세운 후 개성으로 개선하였다. 다시 후군총관사(後軍摠管使)가 되어 연주(漣州 : 지금의 평안남도 개천)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다.

1176년에 윤인첨 ( 尹鱗瞻 )과 함께 서경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조위총을 사로잡아 죽였다. 그 뒤,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영청(永淸 : 지금의 평안남도 평원)을 진수했다. 이듬해 북로처치사(北路處置使)를 겸했고, 뒤이어 상장군·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에 올랐다.

1180년에 공부상서, 이듬해 호부상서, 1185년에 참지정사 ( 參知政事 ), 1190년에 수태위(守太尉)가 되었다. 이듬해 판이부사(判吏部事수국사 ( 修國史 )가 되어 전주(銓注)를 맡았다.

뒤이어 평장사 ( 平章事 )가 되었다가 1193년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이 되었으며, 다시 감수국사 ( 監修國史 )를 겸하였다. 이듬해 이의민 ( 李義旼 )과 함께 문하시중이 되었다가 1196년에 중서령 ( 中書令 )이 되었다.

이듬해 새로 정권을 잡은 최충헌 ( 崔忠獻 )에 의해 자연도(紫燕島)로 귀양갔다가 울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가 금을 가지고 있어 그의 종이 도둑질하려고 은밀히 죽였다고도 전한다.

 

두영(杜瑛)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정승의 맏아들)

 

두현(杜玹)

문하시중(門下侍中)

 

두무지(杜茂枝)

절도사(節度使)

 

두을지(杜乙枝)

울산 병사(蔚山兵使)

 

두승손(杜承孫)

조선 태종(太宗) 때 병마우후(兵馬虞侯)를 지냄.

 

두세준(杜世俊)

세종(世宗) 때 효행(孝行)으로 정려(旌閭)를 받은 세준(世俊) 부자가 유명했다.

 

두사순(杜思順)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두사근(杜思謹)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첨사(僉使)를 역임.

 

두헌(杜憲)

가선대부(嘉善大夫)

 

두정란(杜廷蘭)

정란(廷蘭)은 선조(宣祖)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제 군수(金堤郡守) 정 담(鄭 湛), 조방장 백광언(白光彦), 해남 현감 변응정(邊應井), 고경명(高敬命), 조 헌(趙憲)등과 함께 의병(義兵)을 일으켜 적과 대전하다가 금산(錦山) 전투에서 장렬하게 순절하여 충절(忠節)의 가통(家統)을 이었다.

 

두양필(杜良弼)

인조(仁祖) 때 도총관(都摠管)을 지냄.

 

두기문(杜起文)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벽동 군수(碧潼郡守)로 권 율(權慄)을 도와 금산(錦山) 영정곡(永貞谷)에서 대공(大功)을 세운 기문(起文)이 뛰어났다.

 

두만형(杜萬馨)

만형(萬馨)은 정조(正祖) 때 문필(文筆)로 이름을 떨 쳤다.

 

杜思忠(두사충)의 전설.

 

신령 령(), 샘 천()자를 쓰는 영천리라는 동네가 있는데. 선비들이 서울로 과거 보러 갈 때 이리로 다녔는데, 목이 마르면 그 영천물을 먹었는데 아주 맛이 기가 막혔다. 그래서 전국에서 유명해져 영천이라고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윗 쪽으로 가면 두문령이라고 부르는 데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진다.

 

두사충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 두사충은 임진왜란 때 李如松(이여송)을 따라 조선에 왔다가 명나라가 멸망하게 될 것을 미리알고 조선에 남아 귀화한 무장으로 자기 나라에서 상서벼슬을 지내다가 귀화 후 조선에 와서 大邱(대구)에 정착을 했고 그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그가 태어난 곳을 두릉을 본관으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두사충은 조선에 온 후로 조선팔도를 두루 편력하고 풍수지라에 밝아 주위의 사람들에게 집터 묘터도 보아주었고 두사총 비결을 남기기도 하였다, 지금도 전해져 내려온다.

 

두사충이 조선팔도 묘터를 보러 돌아다니다 안동의 영전마을에 들리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이곳에 묘 터 가 좋은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막상 와서 보니 명당인 묘 터가 좋은 곳이 있어서.

 

이 묘터를 보고 이곳 명당에서 춤을 막 추었다고 해서 두무영(杜舞嶺)이라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한자로 막을 두(), 춤출 무()자를 쓰고 있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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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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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 총 1,163가구, 4,83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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