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魯(강화노씨)
본관(本貫): 강화(江華)
시조(始祖): 노용신(魯龍臣)
유래(由來):
강화 노씨(盧氏)의 연원(연 원(淵源)은 주공(周公:주나라 문왕의 아들, 무왕의 아우)의 아들 백금(伯禽)이 노(魯)땅에 봉해졌다가 노(魯)가 망하자 후손 들이 고을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으로 전한다.
강화 노씨(江華魯氏)는 고려 명종(明宗) 때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내고, 고종조(高宗朝)에 몽고군(蒙古軍)이 침입하여 강화(江華)로 천도(遷都)할 때 강화 현령(江華縣令)으로 공을 세워 강화군(江華軍)에 봉해진 노용신(魯龍臣)을 시조(始祖)로 하고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은 강화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관향(貫鄕)을 강화(江華)로 하였다.
가문의 중요 인물
노유(魯維)
용신의 아들 유(維)는 고려조에서 상서(尙書)를 지냈음.
노충(魯沖)
용신의 손자 충(沖)은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를 역임.
노몽량(魯夢良)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몽량(夢良:중의 아들)과 함께 대를 이어 가세(家勢)를 중흥시켰다.
노신손(魯伸遜)
조선조에서 참의(參議)를 역임.
노춘근
선조(宣祖) 때 무과(武科)에 급제한 춘근은 수문장(守門將)에 올랐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동(家童)을 인솔하여 이순신(李舜臣)의 막하(幕下)로 한산(閑山)과 당포(唐浦) 해전에서 전공을 세우고 고하도(高下島) 싸움에서는 적과 대전하다가 화살이 떨어지자 적장(敵將)을 끌어안고 바다에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나라에서는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하고 부친인 신손(伸遜)과 함께 충신정문(忠臣旌門)을 세워 그이 충절(忠節)을 기렸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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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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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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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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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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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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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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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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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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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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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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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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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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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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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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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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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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博(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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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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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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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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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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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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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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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 남한에 총 3,247가구, 13,28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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