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평양김씨)
본관(本貫): 평양(平壤)
시조(始祖): 김대진(金大振)
유래(由來):
평양 김씨(平壤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으로 고려 때 향공진사(鄕貢進士)를 지내며 나라에 공을 세워 평양군(平壤君)에 봉해진 김대진(金大振)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그 후 중시조 환(環)이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안변 도호부사(安邊都護府使) 겸 북청진관 병마절도사(北靑鎭管兵馬節度使)를 지내고 평강(平康)으로 낙향(落鄕)하여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으며, 후손들은 유정파(楡井派)·문봉파(文峰派)·종광파(宗廣派)·광동파(廣洞派) 등 네 파(派)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1411년(태종 11)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군수(郡守)를 지낸 김여하(金廬遐)를 평양 김씨의 선조(先祖))로 기록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 인물
김윤온(金允溫)
고려 예종(睿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통훈대부(通訓大夫)로 현감(縣監)을 역임.
김권(金權)
성종조(成宗朝)에 등과(登科)하여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냄.
김준걸(金俊傑)
조선조에 와서는 안주 교수(安州敎授)를 역임한 준걸(俊傑)이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인구조사 결과평양 김씨(平壤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227가구, 99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민족대성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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