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풍기김씨)
본관(本貫): 풍기(豊基)
시조(始祖): 김숭원(金崇元)
유래(由來):
풍기 김씨(豊基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後孫)이며 풍산백(豊山伯) 김문적(金文迪)의 16세손인 김숭원(金崇元)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조선 세종조(世宗祖)에 고향인 풍기(豊基)를 떠나 압록강 국경지대인 평안도(平安道) 벽동(碧潼)에 이거(移居)하여 살면서 오백여 년간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여 가문의 융성을 누렸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선조(宣祖)의 고향인 풍기(豊基)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벽동군(碧潼郡) 대평면(大平面)과 학회면(鶴會面)·성남면(城南面) 등지에서 성세(成勢)를 굳혀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득복(金得福), 김득지(金得祉)
시조(始祖) 숭원(崇元)의 증손(曾孫) 득복(得福 : 사재감정을 역임)과 득지(得祉 : 부정을 역임) 형제가 광해군(光海君) 때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순절하였다.
김득우(金得祐)
득우(得祐)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봉사(奉事)로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武功)을 떨친 후 장렬하게 전사하여 충절로 명성을 떨쳤다.
김숙(金淑)
군자감정(軍資監正) 숙(淑)은 득우(得祐)의 아들로서 그의 아우 징(澄 : 판결사를 역임)과함께 이름을 날렸다.
김이진(金以振)
득기(得祺)의 아들 이진(以振)은 부총관(副摠管)을 역임.
김세준(金世俊)
판관(判官)
김두명(金斗鳴)
부호군(副護軍)
김치목(金致穆)
오위장(五衛將)
1985년 인구조사 결과 남한(南韓)에 총 467가구, 2,11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민족대성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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