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함박김씨)
본관(本貫): 함박(咸博)
시조(始祖): 김성인(金誠仁)
유래(由來):
함박 김씨(咸博金氏)의 시조(始祖) 김성인(金誠仁)은 일본(日本) 출신으로 본명(本名)이 사여모(沙汝某)이다.
김해김씨향화공세보(金海金氏向化公世譜)에 의하면 그는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 때 일본군(日本軍)의 좌부장(左部將)으로 우선봉장(右先鋒將) 김충선(金忠善 : 본명 사야가, 우륵 김씨의 시조)과 함께 경남 김해(慶南金海)로 들어와 조선에 귀화(歸化)하여 많은 전공(戰功)을 세우자 경상도 병마절도사(慶尙道兵馬節度使) 박진(朴晋)이 그의 공적(攻積)을 특별히 계문(啓聞 : 임금에게 사실을 아룀)하여, 선조(宣祖) 임금은 그를 아껴 관(冠)을 하사(下賜)하였다고 한다. 그 후 1603년(선조 36) 자원하여 북방 경비(北方警備)에 나가 공을 세웠으며, 광해군(光海君)은 그를 승일상래(乘馹上來)하여 음식을 베풀어 위로하고 김씨(金氏)의 성(姓)과 함께 이름을 성인(誠仁)으로 하사(下賜)하여 자헌대부(資憲大夫 : 정 2품 문무관의 관계)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교지(敎旨)를 내렸다. 그는 그후 벼슬에서 물러나 경북(慶北) 청도군(淸道郡) 풍각면(豊角面) 함박동(咸博洞)에 정착(定着)하여 일생(一生)을 마치니 후손들은 그를 시조(始祖)로 하고 그가 처음 들어온 김해(金海)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러나 서로 혈통이 다른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오늘날에 와서 함박 김씨(咸博金氏)로 개칭하게 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귀성(金貴成)
시조(始祖) 성인(誠仁)의 아들 귀성(貴成)이 대를 이어 북방 경비(北方警備)에 공헌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호분위 상호군(虎賁衛上護軍 )에 이르렀ek.
김흥발(金興發)
시조의 손자(孫子) 흥발(興發)은 인조(仁祖)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무용(武勇)을 떨쳤다.
김수태(金守泰)
1733년(영조 9) 득추(得秋)의 맏아들로 출생한 수태(守泰)는 수직(壽職)으로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 : 종 2품 문무관의 품계)에 이르렀다.
<한민족대성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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