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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화개김씨(金)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화개김씨)

 

 

본관(本貫): 화개(花開)

시조(始祖): 김인황(金仁璜)

유래(由來):

 

화개 김씨(花開金氏)는 고려 원종조(元宗朝)에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화개위(花開尉)에 봉해진 김인황(金仁璜)을 시조(始祖)로 한다.

그 후 경남 고성(慶南固城) 지방에 세거(世居)하던 후손들이 처음에 관향(貫鄕)을 진양(晋陽)으로 사용해 왔고, 하동(河東) 개성(開城) 지방에 살던 후손들은 화개(花開)로 칭관(稱貫)했으나 1876(고종 13) 보첩(譜牒)을 처음 만들면서 본관(本貫)을 화개(花開)로 통일하였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병수(金秉洙)

인황(仁璜)의 아들 병수(秉洙)가 고려  때 예의 판서(禮議判書)를 역임했다.

 

김태문(金泰文)

태문(泰文 : 병수의 아들)은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올라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김규진(金奎震)

시조의 증손(曾孫)인 규진(奎震)은 고려말에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開國)하자 47명의 무사(武士)와 함께 보봉산(寶鳳山)으로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김행일(金行一)

조선 영조(英祖) 때 무과(武科)에 급제한 행일(行一  : 오위장 우보의 아들)이 흥덕 현감(興德縣監)과 오위장(五衛將)을 거쳐 1758(영조 34) 희천 군수(熙川郡守)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어 유애비(遺愛碑)가 세워졌다.

 

김연일(金鍊一), 김진일(金振一)

행일의 아우 연일(鍊一)과 진일(振一)은 통덕랑(通德郞)에 올라 가문을 일으켰다.

 

김택영(金澤榮)

1850(철종 1) 1927. 조선 말기의 학자. 자는 우림(于霖), 호는 창강(滄江), 당호는 소호당주인(韶濩堂主人). 경기도 개성 출생. 개성부 ( 開城府 ) 분감역(分監役) 익복(益福)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윤희락(尹禧樂)의 딸이다.

소년시절부터 고문과 한시를 공부해서 17세에는 성균초시(成均初試)에 합격했다. 20대 전후에 이건창 ( 李建昌 )과 교유를 가지면서 문명(文名)을 얻기 시작했다. 34세인 1883(고종 20) 김윤식 ( 金允植 )의 추천으로 당시 서울에 와 있던 중국의 진보적인 지식인 장첸(張騫)과 알게 되었다. 장첸은 그의 시문을 격찬했다.

1891(고종 28)42세로 진사가 되고, 1894년 편사국주사(編史局主事), 1895년 중추원서기관(中樞院書記官)을 지내고 이듬해 낙향했다. 1903년 다시 홍문관 찬집소(纂集所)에 보직되어 문헌비고 속찬위원(續撰委員)으로 있으면서 통정대부에 올랐다.

1905년 학부 편집위원이 되었으나, 이 해 겨울에 사직했다. 을사조약으로 국가의 장래를 통탄하다가 1908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양쯔강(揚子江) 하류 난퉁(南通)에서 장첸의 협조로 출판소의 일을 보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 시기에 그는 창작활동과 병행해서 한문학에 대한 정리 · 평가와 역사 서술에 힘을 기울였다.

한편, 이승만(李承晩) 등과 관계가 있어 중화민국정부에 우리 나라 독립 지원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썼다. 중국의 계몽사상가인 량치차오(梁啓超) · 장핑린(章炳麟) 등과도 교유가 있었다.

김택영은 한문학사의 종막을 장식하는 대가로서 시에서의 황현 ( 黃玹 )과 문()에서의 이건창과 병칭된다. 그는 고문가(古文家)로서 문장일도(文章一道)를 주장하였으며, 우리 나라 고문의 전통과 맥락을 독자적으로 체계화시켰다.

이것이 여한구가문초 麗韓九家文 崇 이다. 그의 시는 호방하고 화려하여 신운(神韻)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중국 망명 이후에는 주로 우국적인 시작품을 많이 썼다. 특히, 망국의 한을 작품 속에 담아 내어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표출 하였다. 오호부 嗚呼賦 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의 역사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문은 명나라의 귀유광(歸有光)과 박지원 ( 朴趾源 )의 문장을 좋아하여 웅혼한 기상이 있다. 저서로는 한국역대소사 韓國歷代小史 · 한사경 韓史 炬 · 교정삼국사기 校正三國史記 등이 있고 시문집으로 창강고 滄江稿 소호당집 韶濩堂集 이 있다.

 

金勝慶(김승경)의 전설.

 

옛날 경기도 파주 고을의 장사 김승경은 주먹으로 내려치면 바위가 갈라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근 마을을 드나들면서 행패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김승경이 하루는 소개비냥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역시 말을 타고 오는 젊은 초립동이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길을 비키라는 시비 끝에 김승경이 화를 내며 젊은 초립동이를 발로 걷어차니, 초립동이는 말과 함께 벼랑 밑 강물로 떨어졌다.

그러나 사람과 말이 수면에 닿는 순간, 이 초립동이는 말을 안고 그 높은 벼랑을 단숨에 뛰어올라 왔다.

초립동이는 놀라서 도망치는 김승경을 잡아, 몹쓸 짓을 많이 한 김승경의 한쪽 팔과 다리를 부숴 더 이상 행패를 못하게 하였다.

 

이에 크게 깨달은 김승경이 자기를 닮아 성격이 불량하고 행패가 심한 세 아들을 엄히 훈계하여 착한 사람이 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출전: 미족문화대백과사전>

 

 

 

                                                     <한민족대성보>에서 인용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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