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희천김씨)
본관(本貫): 희천(熙川)
시조(始祖): 김우(金佑)
유래(由來):
신라종성(新羅宗姓)으로 선산 김씨(善山金氏)에서 갈려진 희천 김씨(熙川金氏)는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로 일선군(一 善君)에 봉해진 김 추(金 錘)의 셋째 아들 김우(金佑)가 고려 강종(康宗 : 제 22대 왕) 때 문하 시중(門下侍中)으로 나라에 공을 세우고 신호위 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올라 온양군(溫陽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貫鄕)을 온양(溫陽)으로 하였다.
그러나 13세손 김우(金 )가 조선조에서 왕자의 난을 평정(平定)하는 데 공을 세워 희천군(熙川君)에 봉군되었으므로 그를 중조(中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희천(熙川)으로 개관(改館)하게 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우(金宇)
호조 전서(戶曹典書) 영비(英庇)의 아들인 우(宇)는 무예(武藝)에 뛰어났고, 태종(太宗)과의 잠저(潛邸) 때 친분으로 태종의 즉위와 더불어 공신(功臣)에 책록되었다. 슬하에 유지(有智 : 예조 참판을 역임)·존신(存信 : 군수를 역임)·유절(공조 참판을 역임)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가문을 일으켰다.
김용(金用)
우(佑)의 7세손 용(用)은 고려조에 광정대부(匡靖大夫)에 이르렀다.
김백순(金伯醇)
우(宇)의 현손(玄孫) 백순(伯醇)은 1528년(중종 2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친 후 외직으로 나가 수원 군수(水原郡守)와 의주목사(義州牧使)를 역임하며 치적(治蹟)으로 이름이 났으나 서북 출신이라 재상(宰相)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다.
김백균(金百均)
병조 참의(兵曹參議)
김낙(金洛)
부사(府使)
김엄
현감(縣監)
김서진(金瑞震)
병조 참의(兵曹參議)
김양수(金養秀)
감찰(監察)
김익환(金益煥)
익환(益煥)은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
김흥순(金興順)
호조 판서(戶曹判書)
1985년 인구조사 결과희천 김씨(熙川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499가구, 2,14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민족대성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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