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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나주나씨(羅)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나주나씨)

 

 

본관(本貫): 나주(羅州)

시조(始祖): 나부(羅富)

유래(由來):

 

고대 중국(中國) 백익(伯益)의 후예로 전하는 나주 나씨(羅州羅氏)는 시조(始祖)인 나부(羅富)가 강서성(江西省) 예장(豫章)으로부터 동래 (東來)하여 고려조에서 정의대부(正議大夫) 감문위 상장군(監門衛上將軍)을 역임하고 나주(羅州)에 정착(定着)한 것이 시원(始源)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부()의 후손으로 영동정(令同正)에 오른 득규로부터 기일세(起一世)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 특히 일세조인 득규의 증손(曾孫) 수영(守永)의 아들 5 형제가 모두 현달(顯達)하여 가문(家門)의 중흥을 크게 이루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나위(羅位)

수영(守永)의 맏아들 위()는 고려 때 일찍 출사(出仕)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호조 전서(戶曹典書)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당시 혼란한 정국을 개탄하며 벼슬을 버리고 나주에 은거자정(隱居自靖)하여 금양처사(錦陽處士)로 불리워졌다.

 

나동길(羅東吉)

위의 아들 동길(東吉)이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지내고 증주 목사(甑州牧使)로 나가 자손들이 그곳에서 잉거(仍居)하면서 용강(龍岡)과 성주(成州) 등지로 이거(移居)하여 주로 관서북 (關西北) 지방에 집중세거하게 되면서 부터 전서공파(典書公派)의 일족(一族)을 이루었다.

 

나계(羅桂)

수영의 둘째 아들인 계()는 고려에서 벼슬이 중서시랑(中書侍郞)에 이르렀고, 자손들이 주로 경기도(京畿道)에 집중세거하며 시랑공파(侍郞公派)를 이루었다.

그의 묘소(墓所)가 한양성내(漢陽城內)에 있는 것으로 기록에 전하나 실전(失傳)하여 1978년 후손들이 강화군 (江華郡) 하점면(河岾面) 장정리(長井里) 봉천산(奉天山) 남쪽에 6대를 설단(設壇)하고 매년 음력 1013일에 향사 (享祀)하고 있다.

 

나석(羅碩)

금양군(錦陽君) 파조(派祖)인 석()은 고려 때 사온서 직장(司 署直長)으로 나라에 공()을 세워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으며 학문(學問)이 뛰어났고, 나주로부터 김제(金堤)로 이거(移居)하여 자손들이 김제파(金堤派)라고도 하였다.

그의 묘소(墓所)는 김제의 북조산(北造山)에 있었으나 실전하여 후손들이 1954년 김제군(金堤郡) 금산면(金山面) 청도리(淸道里) 종산(宗山)에 설단하고 매년 음력 315일 향사(享祀)하고 있다.

 

나세(羅世)

수영(守永)의 네째 아들로 연안군파 (延安君派)를 이룬 세()는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고 전라도 상원수(全羅道上元帥) 겸 도안무사(都按撫使)를 거쳐 나라에 공을 세워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으며 벼슬이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렀고, 묘소가 실전되어 후손들이 1957년에 충남(忠南) 서천군(舒川郡) 마서면(馬西面) 옥산리(玉山里) 순제동(荀堤洞)에 설단하고 매년 음력 317일에 향사하고 있다.

 

나원(羅源)

수영의 막내아들로 사온서 직장(司 署直長)을 지내고 나주(羅州)에 세거(世居)했던 원()은 직장공파(直長公派)의 파조(派祖)가 되었고, 묘소는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냈던 아들 진()과 함께 나주 송현(松峴)에 있으며 33일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나득강(羅得康)

조선 세종(世宗) 때 이조 판서(吏曹判書) 겸 세자시강원 찬선 (世子侍講院贊善)을 지냄.

 

나공언(羅公彦)

전농시정(典農寺正)으로 공()을 세워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짐.

 

나응허(羅應虛)

명종(明宗)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청주 판관(淸州判官)으로 나감.

 

나흡(羅恰)

양천 현감(陽川縣監)으로 선정 (善政)을 베풀어 군민들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웠던 흡()이 유명했다.

 

나순(羅恂)

풍덕 군수(豊德郡守)

 

나치온(羅致溫)

광주 유수(廣州留守)를 지내고 판서(判書)에 추증됨.

 

나덕신(羅德愼)

영광 군수(靈光郡守)를 거쳐 무장 현감(茂長縣監)으로 선무원종일등공신 (宣武原從一等功臣)에 책록.

 

나덕헌(羅德憲)

1573(선조 6) 1640(인조 18).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헌지(憲之), 호는 장암(壯巖). 아버지는 이성현감(尼城縣監) 사침(士 甚 )이다. 1603(선조 36)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을 거쳐 1624(인조 2) 이괄 ( 李适 )의 난 때 도원수 장만 ( 張晩 )의 휘하에서 종군했다.

특히, 안현전투(鞍峴戰鬪)에서 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봉해졌다. 외교적 수완이 능해 여러 차례 심양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이후 길주목사(吉州牧使)를 거쳐 1635년 창성부사(昌城府使) · 의주부윤을 역임하고, 1636년 춘신사(春信使)로 다시 심양에 갔는데 동지(同知) 이확 ( 李廓 )과 심양에 도착했다.

이 때 후금의 태종은 국호를 청()이라 고치고 황제 ( 皇帝 )를 칭하며 즉위식을 거행했다.

우리 나라 사신에게도 경축반열에 참석하라고 했으나, 하례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옷이 찢어지고 갓이 부서지는 구타를 당했다. 구타와 회유를 거듭해도 시종 거부하다가, 청나라가 볼모를 요구하는 국서를 주어 돌려보내기로 하자, 내용을 알기 전에는 받을 수 없다고 받지 않았다.

100여 명의 기병으로 통원보(通院堡)까지 호송되었는데, 기병의 호위가 풀리자 통원보의 호인(胡人)에게 국서를 맡기고 귀국했다. 이 사실을 안 삼사 ( 三司 )와 조복양 ( 趙復陽 )을 중심으로 한 관학 유생들은 황제참칭(皇帝僭稱)의 국서를 받았다고 논핵했다.

영의정 김류(金 濫 )까지 가세한 조정의 거센 척화론으로 위기에 몰렸으나, 이조판서 김상헌 ( 金尙憲 )의 적절한 변호로 극형만은 면하고 백마산성 ( 白馬山城 )으로 유배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후 과거 춘신사로 심양에 가서 하례를 거부, 항거한 사실이 밝혀져 유배에서 풀려나 삼도통어사로 특진되었으며, 1639년 벼슬에서 물러났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며, 정문 ( 旌門 )이 세워졌다.

 

나위소(羅緯素)

1583(선조 16) 1667(현종 8). 조선 중기의 문신.자는 계빈(季彬). 할아버지는 사침(士 甚 )이고, 아버지는 현감 덕준(德峻)이며, 어머니는 증판결사 황호(黃顥)의 딸이다.

1616(광해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23(인조 1) 개시문과(改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형조좌랑 등을 지내고, 옥과현감(玉果縣監)으로 재직중 1627년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체찰사 ( 體察使 ) 이원익 ( 李元翼 )을 도와서 무기와 군량의 조달에 힘썼다.

뒤에 호조정랑 겸 기주관 · 직강 · 사예 · 임천군수를 거쳐, 1634년 예조정랑 · 태상시첨정 · 상의원도정을 역임하였다. 1636년 이후로 풍기군수 · 원주목사 · 사예 · 태상시정 등을 거쳐 경주부윤에 이르러 고향으로 내려갔다. 만년에는 수직(壽職 : 연로한 관원에게 주는 명예직)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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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23,284 가구, 99,089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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