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정산김씨)
본관(本貫): 정산(定山)
시조(始祖): 김복수(金福壽)
유래(由來):
정산 김씨(定山金氏)의 시조(始祖) 김복수(金福壽)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15세손 김 한(金 漢)의 둘째 아들로 전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조선조에서 현감(縣監)을 지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 : 연산군 때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신진사류가 훈구파에 의하여 화를 입은 사화)에 연루되어 정산(定山)으로 이거(移居)하였다가 다시 평안도(平安道)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광유(光酉)로 개명(改名)한 후 전 거주지였던 정산(定山)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다고 한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덕립(金德立)
시조(始祖) 복수(福壽)의 현손(玄孫) 덕립(德立)이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장군(將軍)을 지냈다.
김득일(金得鎰)
덕립의 맏아들 득일(得鎰)은 통정대부(通政大夫 : 정 3품 당상관의 품계)에 올랐다.
김진모(金鎭模)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진모(鎭模)가 찰방(察訪 : 각 도의 역참을 관장하던 종 6품의 외관직)을 역임하여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산 김씨(定山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49가구, 21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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