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진도김씨)
본관(本貫): 진도(珍島)
시조(始祖): 김국빈(金國儐)
유래(由來):
진도 김씨(珍島金氏)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전하고 있으나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이 없어 확실한 선계(先系)를 상고(祥考)할 수 없다. 신라김씨분종보(新羅金氏分宗譜)에 의하면 고려조에서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지낸 김혁흥(金奕興)의 후손인 김자경(金自敬)이 조선에서 선무랑(宣務郞)에 오르고 후손들이 진도(珍島)에 토착세거(土着世居)함으로써 본관(本貫)을 진도(珍島)로 하 게 되었다고 한다.
그외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여지승랑(東國與地勝覽)등의 문헌에는 사용(司勇)에 오른 천손(千孫)을 일세조(一世祖)로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 때 삼정(三政)의
하나인 군정(軍政)에 일하던 김국빈을 일세조(一世祖)로 하는 문헌도 전한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영(金榮), 김일경(一敬)
강도 호장(江度戶長)을 지낸 영(榮 : 국빈의 아들)과 그의 아들 일경(一敬)이 대
원수(大元帥)에 올라 명성을 떨쳤다.
김윤(金潤)
조선조에서 자경(自敬)의 아들 윤(潤)이 중종(中宗)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사예(司藝)를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김중태(金重泰)
한편 직산(稷山)의 정자리(亭子里)에 살았던 중태(重泰)는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손가락을 잘아 부모의 병간호를 하였고 겨울철에 부모가 원하는 물고기를 잡으려 할 때 오리가 고기를 잡아 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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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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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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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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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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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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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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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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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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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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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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聲(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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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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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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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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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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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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坤(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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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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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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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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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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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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錫(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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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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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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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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恒(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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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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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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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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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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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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鼎(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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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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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인구조사 결과 진도김씨(珍島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315가구, 1,36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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