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창원김씨)
본관(本貫): 창원(昌原)
시조(始祖): 김을진(金乙軫)
유래(由來):
창원 김씨(昌原金氏)의 시조(始祖) 김을진(金乙軫 : 초명은 광준)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鐘)의 18세손이다.
그는 고려조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라 태자 첨사(太子詹事)로 동궁(東宮)의 사무(事務)를 관장하였고, 공민왕(恭愍王) 때 홍건적(紅巾賊)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창원(昌原)으로 하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 인물
김왈원(金曰元)
시조 을진(乙珍)의 아들 왈원(曰元)이 고려 충혜왕(忠惠王) 때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내고 상호군(上護軍)에 올라 피난 가는 왕을 호종(扈從)하여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으며, 충정왕(忠定王) 때 삼사(三司)의 으뜸 벼슬인 판삼사사(判三司事)로 나라에 공을 세워 의창부원군(義昌府院君)에 봉군(封君)되어 크게 명성을 떨쳤다.
김맹창(金孟昌)
왈원(曰元)의 손자로 참판(參判)을 역임한 갱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맹창(孟昌)이 군수(郡守)를 지냈다.
김중창(金仲昌)
현감(縣監)을 역임.
김계창(金季昌)
계창(季昌)은 1462년(세조 7)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예종(睿宗) 때 부제학(副提學)을 거쳐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냈다.
1985년 인구조사 결과 남한(南韓)에 총 889가구, 33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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