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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영광김씨(金)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영광김씨)

 

본관(本貫): 영광(靈光)

시조(始祖): 김심언(金審言)

유래(由來):

 

신라종성(新羅宗姓)의 후예(後裔)인 영광 김씨(靈光金氏)는 경순왕(敬順王)의 네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현손(玄孫)인 김심언(金審言)을 시조(始祖)로 한다.  

문헌(文獻) 의하면 그는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진 염의 셋째 아들로서 당대의 석학(碩學)  ( )의 문하(門下) 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성종(成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우보궐(右補闕)로써 기거주(起居注)를 겸했고, 990(성종 9) <봉사이조(封事二條)>를 상소하여 성종(成宗)의 정책(政策) 수행에 유일(唯一)한 지침(指針)이 되게 하였으며 [육정육사론(六正六邪論)][자사육조(刺史六條)]를 저술하여 후세의 정치사상과  제도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현종(顯宗)이 즉위하자 그는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승진되어 예부상서(禮部尙書)를 거치고 내중시랑평장사(內中侍郞平章事)에 이르러 오성(筽城 : 영광의 옛  지명) ()에 봉해졌으므로 후손(後孫)들이 관향(貫鄕)을 영광(靈光)으로 하게 되었다.  1018(현종 9)에 그가 세상을 떠나자 왕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문안(文安)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며,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겨 무신(武臣) 강감찬(姜邯贊)장군과 쌍벽을 이루는 당대의 명신(名臣)으로 알려져 왔다.  

 

그후 후손들은 개성(開城) 서쪽에 터를 잡고 살면서 고려조에서 명성을 떨쳤는데 시조  심언(審言)의 아들 윤보(允輔)가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판소부시사(判少府寺事)를 역임했고, 현손(玄孫) 극검(克儉)은 숙종조(肅宗朝)에 태자 소사(太子少師 : 태자부의 종 2품 벼슬), 6세손 영부(永夫)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와 판병부사(判兵部事)를 역임하는 등 많은 명현(名賢)과 장상렬사(將相烈士) 배출하여 크게 번성하였으며,  특히 고려시대 중앙요직의 하나인 평장사(平章事)를 많이 배출하여 이 마을을 평장동(平章洞)이라  불렀다.  

 

그러나 영광 김씨는 1170(의종 24) 정중부(鄭仲夫)와 이의방(李義方) 등이  ()을 일으켜 많은 문신(文臣)들이 화()를 당할 때 무신(武臣)들의 처절한 정치적인 보복으로 멸문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이 전국각지에 흩어져 깊은  산골에 살면서 혈맥을 이었다.  

 

그로 인하여 영광 김씨는 중간계대(中間系代) 실전(失傳)되어 시조 심언(審言)의 맏아들 윤보(允輔)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경파(京派 : 정보장흥파(長興派 :태용영광파(靈光派 : 무장파(茂長派 :효민양사파(良士派 :  광찬용강파(龍岡派 : 중보삼화파(三和派  : 무수) 등으로 계대(系代)하여 왔으며, 강계파(江界派)만은 차남 문경(文卿) 후손으로 세계(世系)를 계 승하여 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정보(金正父)

경파(京派)인 정보(正父)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금오위별장(金吾衛別將)을 역임했고, 후손들이  경기도(京畿道) 파주(坡州) 및 화성군(華城郡)과 충청도(忠淸道) 홍성군(洪城郡) 일대에 많이  살고 있다.  

 

김천보(金千寶)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1320(충숙왕 7) 대언 ( 代言 )으로 있을 때 상왕 ( 上王 )인 충선왕이 토번(吐蕃 : 티베트)에 유배되자 그동안 그의 측근에서 기생하면서 권세를 부리고 매관매직을 일삼아왔던 권한공 ( 權漢功 이광봉 ( 李光逢 ) 등의 무리를 잡아 이문소(理問所)에서 치죄하게 되었는데, 찬성 ( 贊成 ) 오잠(吳潛)과 같이 이 일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왕이 원나라에 불려가서 머무르게 되자 측근에 있으면서 왕을 보좌하였다. 1324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와 대사헌 ( 大司憲 )에 오른 뒤 통화군(通化君)에 봉해졌다.

심양왕 고(瀋陽王暠)의 일이 마무리된 직후인 132711월 왕이 억류되어 있을 때 시종하였던 여러 신하들 가운데 특히 공이 있는 자 79인에 대하여 포상할 때 2등공신호를 받았다. 1354(공민왕 3) 벼슬이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렀다.

 

김사순(金思順)

천보(千寶)의 손자 사순(思順)은 공민왕(恭愍王) 때 홍건적(紅巾賊)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병부 상서(兵部尙書)에 올라 오산군(筽山君)에 봉해졌다.

 

김영령(金永齡)

사준의 현손 영령(永齡)이 성종조(成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공을 세워 정사좌명공신(靖社佐命功臣)에 책록되어 크게 명성을 날렸다.  

 

김찬(金瓚)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낸 태용(台用)을 파조(派祖) 하는 장흥파(長興派)는 그

의 증손(曾孫) ()과 필이 세종(世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과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각각 지냈는데, 이들 형제는 삼도(三道)의 관찰사(觀察使) 등 요직을 역임하며 나라에 공을 세웠으나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찬탈하자 이를  개탄하고 벼슬을 버린 후 장흥(長興)으로 낙향한 절신으로  이들의 후손들이 오늘날 장흥(長興)지방에  집중세거하고 있다.  

 

김광원(金光遠)

1478(성종 9) 1550 (명종 5).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언명(彦明), 호는 월봉(月峰). 평강현감 경의(敬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필( )이고, 아버지는 헌납 괴()이며, 어머니는 참의 우효신(禹孝新)의 딸이다.

조광조 ( 趙光祖 )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조광조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1519(중종 14) 사마양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해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화를 당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인 장흥(長興)으로 돌아왔다. 그 뒤 1521(중종 16) 이문습독관(吏文習讀官)으로 있으면서 안처겸 ( 安處謙 )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海南)에 유배되었다.

당시 기묘사화로 조정은 사림들을 몰아내고 오로지 남곤 ( 南袞 ) · 심정 ( 沈貞 ) 등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안 처겸은 시산부정(詩山副正) 정숙(正叔) · 권전(權 愈 ) 등과 함께 간신들을 제거하여 국세를 바로잡아 볼 것을 논의하였다.

이때 송사련 ( 宋祀連 ) 등이 이를 듣고 밀고하여 일은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송사련의 밀고 문서에 습독관인 그도 들어 있었으나 당시 조광조를 구하려하였던 정광필 ( 鄭光弼 )의 두호로 해남(海南)에 유배되는 것으로 그쳤다.

그 뒤 1533년 유배에서 풀려나 벼슬을 그만두고 장흥으로 돌아와 후진교육에 힘썼다. 사후 이조참의에 이어 이조참판에 각각 추증되었다. 장흥의 예양서원 ( 汭陽書院 )에 제향되었다.

 

김광범(金光範), 김상범(金尙範), 김성범(金聲範)

태용(台用)9세손(世孫)이며 해수(海壽) 아들인 광범(光範상범(尙範성범(聲範) 3형제는 문학과 도덕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해(金該)

충렬왕조(忠烈王朝)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연()을 파조로 하는 영광파(靈光派)는 호남(湖南)의 영광군(靈光郡)과 정주군(井州郡) 지방에  집중세거하며, 연의 손자  ()가 조선 태종(太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세종(世宗) 때 갑산  병마절제사(甲山兵馬節制使)와 보공장군(保功將軍)을 겸하였으며, 대호군(大護軍)으로 대마도(對馬島) 정벌(征伐) 때 순절하여 나라에서 <만장이절(輓章二絶)>과 충절(忠節)이라 시호(諡號)를 내리고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추증하였다.  

 

김개(金漑)

()의 손자 개()는 성종(成宗) 때 등과(登科)하여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냈으며 효행(孝行)과 학문(學問)이 출중하여 문하(門下)에서 많은 제자가 배출되었다.   

김효민(金孝敏)

무장파조(茂長派祖) 효민(孝敏)은 고려에서 서경 유수(西京留守) 역임하였다.

 

김성헌(金聖獻)

효민의 16세손  성헌(聖獻)은 영조(英祖) 때 문과(文科)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여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냈다.  

 

김광찬(金光纘)

양사파(良士派)의 광찬(光纘)은 고려조에서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하였다.

 

김호

광찬의 아들 호는  조선이 개국(開國)되자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손자 맹수(孟粹)는 현령(縣令)을 역임하였다.

 

김중보(金重寶)

용강파(龍岡派)에서는 파조(派祖) 중보(重寶)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냈고, 아들 효흥(孝興)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현손(玄孫) 희걸(禧傑)은 아들 몽학(夢學)과 함께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른 무지(武只 : 승록의 아들)와 더불어 가문을 빛냈다.   

 

김무수(金懋修)

삼화파(三和派)의 무수(懋修)는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에 살다가 평안도(平安道) 삼화(三和)로 이거(移居)하여  삼화파(三和派)를 이루었다.

 

김홍(金泓)

예부 상서(禮部尙書) 문경(文卿)으로 이어지는  강계파(江界派)는의 손자 홍()이 목사(牧使)를 지냈고, 현손(玄孫) 보원(寶元)이 부사과(副司果),  6세손 서()는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했다.  

 

김장혁(金長赫)

문경(文卿)7세손 장혁(長赫)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에 재직중 강계(江界)에 침입한 여진족 (女眞族) 토벌하여 크게 명성을 날렸다.

 

김여중(金汝重)

여중(汝重)이 생원(生員)과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모아 진주성(晋州城) 싸움에서 공을 세웠다.  이에 선조(宣祖)가 크게 기뻐하여 좌찬성(左贊成)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낙향했다가  정유재란(丁酉再亂)에 다시 의병(義兵) 이끌고 이순신(李舜臣)의 막하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김우

우는  당대의 석학(碩學) 이항로(李恒老)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배우고 동문학우(同門學友)인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과 함께 항일투쟁(抗日鬪爭) 앞장섰으며 한일합방(韓日合邦)의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해 단식 순절했다.  해방(解放)과 더불어 그의 숭고한 충절을 기려 서원(書院)에 향사(享祀)되었다.   

 

김규철(金圭哲)

규철(圭哲)은 갑오농민군(甲午農民軍)을 지휘(指揮)하여 관기(官紀)를 바로잡고 의병(義兵)에 가담, 항일투쟁에 헌신하다가 한일합방이 되자 국운을 개탄하여 산 속으로 은거(隱居)한 후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가문(家門)의 전통(傳統)을 살렸다.

 

 

출전 <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항렬자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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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南韓)에 총 6,689가구, 28,44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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