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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영산김씨:영동김씨(金)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영산:영동김씨)

 

본관(本貫): 영산(永山):영동(永東)

시조(始祖): 김영이(金令貽)

유래(由來):

 

신라 제 31대 신무왕(神武王)의 넷째 아들 김익광(金益光)의 후예(後裔)로 전하는 영산  김씨(永山金氏)의 시조(始祖) 김영이(金令貽)는 고려조에서 전객시령(典客寺令)을 역임한 후 추충동덕보사공신(推忠同德保社功臣)으로 검교도첨의찬성사(檢校都僉議贊成事)에 추증되고 영산군(永山君)에 추봉(追封)되었으며, 그의 맏아들 길원(吉元)이 공민왕(恭愍王)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로 홍건적(紅巾賊) 토평하는 데 공을 세워 영산부

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영산(永山)에 세거(世居)하면서 김영이(金令貽)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영산(永山)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종경(金宗敬)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 길원(吉元)의 맏아들 종경(宗敬)이 고려 정종(定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우찬성(右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거쳐  도총관(都摠管 : 오위도총부에서 군무를 총괄하던 정 2품 최고군직)을 지냈다.

 

김수온(金守溫)

종경(宗敬)의 손자 수온(守溫)은 세종(世宗)과 세조(世祖) 때의 명신(名臣)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1441(세종 23) 문과(文科)에 오른 수온(守溫)은 중시(重試)를 거쳐 발영시(拔英試)와 등준시(登俊試)에 모두 장원하고, 교서관 정자로 있으면서 세종(世宗) 특명으로 집현전(集賢殿)에서 [치평요람(治平要覽)][의방유취(醫方類聚)]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부사직(副司直)에 올라 [석가보(釋迦譜)]를 증수(增修)하였다.  그 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올라 세조(世祖) 총애를 받았으며, 1471(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고, 학문(學問) 문장(文章)에 뛰어나 명()나라에까지 문명(文名)을 떨쳤다.  벼슬이 극품(極品)에 이르렀으나 항상  청빈하게 살았다.  1481(성종 12) 병이 악화되어 운명이 가까워지자 자제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은 부디 [중용(中庸)][대학(大學)]을 많이 읽지 마라. 내 이제  혼미한 중에서도 눈앞에 서언한 것은 모두 중용과 대학의 글자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학문에 깊이가 있었다.  

당대의 석학(碩學) 구종직(丘從直)은 남의 표문(表文)을 써준 것을 보고  모래 위에 꿇어 앉으면서 "평일에  비록 공의 문장이 교묘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이 경지에  이를 줄은 몰랐오"하며 극찬했다고 한다.  

 

신미(信眉)

수온(守溫)의 형은 신미(信眉)라는 불명(佛名)으로 탈속하며 웅문거필(雄文巨筆)로 명성을 떨쳤으며, 속리산(俗離山) 성불사 (成佛寺) 복천암(福泉菴)에 사리(舍利)를 남기고 있다.   

 

김곤(金滾)

학행(學行)으로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천거되었다.

 

김언건(金彦建)

뛰어난 효행(孝行)으로 감찰(監察)에 증직된 언건(彦建)이 유명했다.

 

김각(金覺)

광해군(光海君) 때 용궁 현감(龍宮縣監)을 지냄.

 

김득진(金得進)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김염근(金廉謹), 김호덕(金好德)

부호군(副護軍)

 

金守溫(김수온)의 일화.

 

1457(세조 3) 사예(司藝)로서 문과 중시에 2등으로 급제해 첨지중추부사가 되고, 이듬 해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정조부사(正朝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9년에 한성부윤, 이듬 해 상주목사, 1464년 지중추부사 ·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66년 발영시(拔英試) 등준시(登俊試)에 모두 장원, 판중추부사에 오르고 쌀 20석이 하사되었는데, 문무과 장원에게 쌀을 하사하는 것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책을 읽는데 특별한 버릇이 있는데, 읽은 책장은 꼭 찢어서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한번은 신숙주(申叔舟) 선생에게 귀중본을 빌려서 책을 다 읽고, 그 책장을 모두 찢어 벽에 도배를 하고서 누워 그 글귀를 읽었다고 한다.

책을 찾으러 온 신숙주 선생이 이 광경을 보고 깜작 놀랐으나 이미 책은 없어지고 만 뒤 였다.

 

뿐만 방바닥에 책을 방석처럼 나란히 늘어놓고 그 위에 누어서 코를 골고 자기도 하였다 한다.

책 읽기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앞마당에 오래 자란 회화나무를 아낌없이 배어 화목으로 때 버리기도 하고, 독서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방안으로 날아 온 낙엽을 보고서야 비로소 가을이 온 것을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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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영산 김씨(永山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3,597가구, 15,11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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