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우봉김씨)
본관(本貫): 우봉(牛峰)
시조(始祖): 김오(金澳)
유래(由來):
우봉 김씨(牛峰金氏)의 시조(始祖) 김오(金澳)는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鐘)의 맏아들이다.
그는 고려 성종(成宗 : 제 6대 왕) 때 시어사(侍御史)로 나라에 공을 세워 수지의후(首知衣侯)에 봉해졌다가 다시 우잠군(牛岑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관향(貫鄕)을 우봉(牛峰)으로 삼게 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항일(金恒逸)
오(澳)의 손자(孫子) 항일(恒逸)이 고려 문종(文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보리공신(輔理功臣)으로 잠성군(岑城君)에 봉군됨.
김원길(金元吉)
한일의 손자 원길(元吉)이 전공도위(典工都尉)로서 우봉군(牛峰君)에 봉해짐.
김관의(金寬毅)
관의(寬毅 : 원길의 아들)는 금성군(金城君)에 봉해짐.
김질
우봉 김씨는 우령군(牛嶺君) 질이 한림학사(翰林學士)·문하시중(門下侍中)·시어사(侍御史)·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 등을 지내며 명문(名門)의 기틀을 다졌고, 계속하여 <오대봉군(五大封君)>과 <사대정승(四代政丞)>을 낳아 고려조에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김탁(金鐸)
세종(世宗)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과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내고 원종일등공신(原從一等功臣)에 오른 탁(鐸)이 유명했다.
김지복(金之福)
성종(成宗) 때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낸 지복(之福)은 학행(學行)이 뛰어나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어 명성을 떨쳤다.
김우서(金禹瑞)
1536년(중종 31) 무과(武科)에 급제한 우서(禹瑞)가 갑산(甲山)·부령(富寧)·경원(慶源) 등지의 만호(萬戶)를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와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를 지내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다.
김도명(金道鳴)
도명(道鳴)은 숙종(肅宗) 때 온성 부사(穩城府使)와 청주 영장(淸州營將)을, 정명(鼎鳴)은 여산(礪山)·상주(尙州) 등지의 영장(營將)을 역임.
김언기(金彦基)
부호군(副護軍)
김언영(金彦英)
절충장군(折衝將軍)
김지남(金指南)
현종(顯宗) 때 역과(譯科)에 급제한 지남(指南)은 일본(日本)과 청(淸)나라에 다녀와서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과 [통문관지 (通文館志)]를 편찬하여 대외관계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자료를 남겼다.
김경문(金慶門)
경문(慶門)은 1712년(숙종 38) 역관(譯官)으로서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울 때 통역을 맡았다.
김진명(金振鳴),김언기(金彦耆),김언기(金彦朞),김상두(金象斗)
진명(振鳴)·언기(彦耆)·언기(彦朞)·상두(象斗) 등은 효행(孝行)으로 이름을 날려 전통(傳統)의 가문을 더욱 빛냈다.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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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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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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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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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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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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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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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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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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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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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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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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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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炯(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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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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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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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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埰(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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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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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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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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杓(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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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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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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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614가구, 2,50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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