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아라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金(웅천김씨)
본관(本貫): 웅천(熊川)
시조(始祖): 김중재(金重材)
유래(由來):
웅신백사적기(熊神伯事蹟記)에 의하면 신라 말에 견훤(甄萱)이 수차에 걸쳐 후고구려를 침범(侵犯)하자 웅신백(熊神伯)이 경애왕(景哀王 : 신라 제 55대 왕,)의 명(命)을 받아 5천 장병(將兵)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이를 격퇴시키고 돌아오니 왕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웅신현(熊神縣)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 곳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면서 관향(貫鄕)을 웅천(熊川)으로 하게 되었으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 되어 시조(始祖)의 이름이 전하지 않으므로 조선조에서 수의부위(修義副尉)에 오른 김중재(金重材)를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중요 인물
김희춘(金希春)
원종공신(原從功臣) 의령(일세조 중재의 손자)과 그의 아들 희춘(希春 : 통정대부에 오름)이 유명.
김학수
희춘(希春)의 아들 학수는 집의(執義)에 추증.
김남원(金南元)
좌승지(左承旨 : 정 3품 당상관 벼슬) 신진(信珍)의 아들 남원(南元)은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김우경(金禹慶)
남원(南元)의 아들 형제 중 맏아들 우경(禹慶)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김우용(金禹鎔), 김진창(金振昌)
남원의 차남 우용(禹鎔)과 셋째 진창(振昌)은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김홍택(金弘澤)
우경(禹慶)의 아들 홍택(弘澤)이 1728년(영조 4)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뒤에 양
무공신(揚武功臣)에 책록되었다.
김취환(金就煥)
홍택의 계자(系子) 취환(就煥 : 생부는 홍필)이 1750년(영조 26)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름.
김홍렴(金弘濂)
감찰(監察)
김취공(金就恭)
지평(持平)
김취행(金就行)
예조 좌랑(禮曹佐郞)
출전<한민족대성보>.
항렬(行列)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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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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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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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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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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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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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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勳(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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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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淳(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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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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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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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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均(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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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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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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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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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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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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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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烈(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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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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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
과에 의하면 웅천 김씨(熊川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128가구, 46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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