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黃(성주황씨)
본관(本貫): 성주(星州)
시조(始祖): 황세득(黃世得)
유래(由來):
성주 황씨(星州黃氏)의 시조 황세득(黃世得)은 고려 때 대상을 지낸 황석주(黃石柱)의 17세손이며, 후손들이 성주에 세거하면서부터 본관을 성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충장공 세득(世得)은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장흥 부사에 이르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 종군하여 선봉으로 벽파정·고금도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격전중 순사했다.
가문의 중요 인물
황박(黃珀)
본관은 성주(星州). 직산(稷山) 출신. 아버지는 장흥부사 황세득(黃世得)이다. 지략이 뛰어나 병서(兵書)와 천문·지리에 밝았다.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이 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명나라 사신이 왔다가 후금(後金: 뒤의 청나라)이 심양(瀋陽)과 요양(遼陽)을 함락하여 육로가 막히자, 해로로 등주(登州)로 돌아가려 할 때 자원하여 철산거우도(車牛島)에서 출발하여 무사히 등주까지 전송하고 돌아왔다.
1634년(인조 12) 의주부윤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다. 노령으로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천문을 보고 청군의 내침을 예측, 군비확충을 주장하였다.
마침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호서지방의 정세규(鄭世䂓)가 이끄는 근왕병(勤王兵)에 소속되어 용인에서 전투 중 얼굴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숙종 때 그의 부자에 대한 정문이 고향에 세워졌고, 공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출전(다움 백과사전)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성주 황씨(星州黃氏)는 남한에 총 1,047가구, 5,51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미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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