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黃(제안 황씨)
본관(本貫): 제안(齊安)
시조(始祖): 황을구
유래(由來):
제안 황씨(齊安黃氏)에서 분적된 계통으로 회산부원군 황석기의 증손 황을구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시조 을구는 고려조에서 문과에 급제하여 소윤과 이조 참의 를 역임한 후 나라에 훈공을 세워 제안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봉군지명인 제안을 본관으로 삼아 창원 황씨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가문의 중요 인물
황대붕
을구의 7세손 대붕이 조선조에 호성원 중공신에 올라 현령·군수를 지냈다.
황응성(黃應聖)
자는 경우(慶遇). 현손(賢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세장(世章)이며, 아버지는 대림(大臨)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중국에서 보내온 군량미 운송에 동원된 선부(船夫)들에게 선조의 명을 받아 공명첩을 발행하였다.
전란의 와중에 계속되는 흉년으로 기아에 허덕이던 민중들의 불만을 이용한 이몽학(李夢鶴)의 난이 1596년(선조 29)충청도에서 발생하자 보령현감으로서 역적들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청난공신(淸難功臣)에 봉해졌고, 그 뒤 사헌부감찰과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출전(다움 백과사전)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제안 황씨는 남한에 총 603가구, 2,35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미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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