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崔(죽산최씨)
본관(本貫): 죽산(竹山)
시조(始祖): 최효운(崔孝雲)
유래(由來):
죽산 최씨(竹山崔氏)는 소벌도리(蘇伐都利)의 원손(遠孫)이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으므로 본관(本貫)을 죽산(竹山)으로 하여 계대(繼代)를 이어왔으나, 중간계보(中間系譜)가 병화(兵火)로 실전(失傳)되어 소목(昭穆)을 밝힐 수 없으므로 죽산군(竹山君)의 원손(遠孫)인 일죽공(一竹公) 최효운(崔孝雲)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조선조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지내고 홍문관대제학(弘文大提學).지경연사(知經筵事)에 이르렀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최세형(崔世亨)
일세조 효운(孝雲)의 아들 세형(世亨)이 부총관(副摠管)을 지냈다.
최충좌(崔忠佐)
세형의 아들 충좌(忠佐)는 조선 세조(世祖)의 맏아들 덕원군(德源君) 서(曙)의 사위가 되었다.
최영
충좌(忠佐)의 아들 영( )은 면천 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최임(崔琳)
영의 아들 임(琳)은 1636년(인조14) 병자호란 때 안방준(安邦俊)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전쟁에 공(功)을 세우고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을 지냈다.
최침(崔琛)
개천 군수(价川郡守)를 역임한 침(琛)은 형인 임(琳)과 함께 삼정사(三亭祠)에 제향(祭享)되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죽산 최씨(竹山崔氏)는 남한에 총 169가구, 72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나타났다.
출전 <한미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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