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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성씨


충주최씨(崔)

청남

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崔(충주최씨)

 

 

본관(本貫): 충주(忠州)

시조(始祖): 최승(崔陞)

유래(由來):

 

충주 최씨(忠州崔氏)의 시조(始祖)는 최승(崔陞)으로, 846년(신라 문성왕8) 신라에 흉년이 들어 도처에서 도적들이 무리를 지어 퍼져 갈 때 당(唐)나라 무종(武宗)의 명을 받아 병마사(兵馬使)가 되어 이를 토평(討平) 하였고, 889년(진성여왕3) 원종(元宗)·애노(哀奴) 등이 사벌주(沙伐州)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平定)하여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올랐다.

그 후 승(陞)은 예성(蘂城)에 그대로 머물러 세거(世居)하였으므로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충주(忠州)로 하였으나 상계(上系)가 실전되어 승의 후손으로 호장(戶長)을 지낸 공의(公義)를 일세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가문의 중요 인물

 

최옥(崔沃)

공의(公義)의 손자 옥(沃)이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벼슬길에 올라 1324년(충숙왕11)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으며, 특히 옥이 부정(副正)으로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읍 장덕리에 재직중 1264년(고려 원종5)에 심었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166호로 지정되었고, 천연기념물 제 97호로 지정된 밤나무는 지금도 해마다 굵은 밤이 열려 귀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최백청(崔伯淸)

옥의 장남 백청(伯淸)은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역임했다.

 

최중청(崔仲淸)

옥의 차남 중청(仲淸)은 판관(判官)을 지냈다.

 

최우청(崔遇淸)

?∼1184(명종 14).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문하시랑(門下侍郎) 옥(沃)의 아들이다. 충주의 주리(州吏)로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진례현위(進禮縣尉)가 되었다. 명종의 잠저 ( 潛邸 ) 때 익양부(翼陽府) 전첨 ( 典籤 )을 역임하고, 명종이 즉위하자 구료(舊僚)로 총임(寵任)되어 대간직(臺諫職)에 있었다.

1174년(명종 4) 병마부사 ( 兵馬副使 )로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국자좨주(國子祭酒)를 거쳐 좌간의대부 ( 左諫議大夫 )에 발탁되어 1177년 고시관(考試官)을 맡아 시부(詩賦)로 박돈장(朴敦章) 등과 10운시(十韻詩)로 김각장(金角章) 등을 시취 ( 試取 )하였다.

이 해 서북면병마사로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킨 정주도령(靜州都領) 순부(純夫)와 낭장 김숭(金崇)을 참살한 공으로 판위위사(判尉衛事)에 승진되었다. 1180년 추밀원사 태자빈객(樞密院使太子賓客)을 거쳐 이듬해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가 되었다. 72세에 퇴관을 요청하였으나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를 가하여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최원유(崔原儒)

원유(原儒)는 중청(仲淸)의 5세손으로 고려 말 유림(儒林)의 영수로서 당대의 명신(明臣) 정몽주(鄭夢周) 등과 교유했고 벼슬은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에 이르렀으며, 정몽주(鄭夢周)가 순절(殉節)하자 음독 자결했다.

 

최염

원유(原儒)의 아들 염은 고려 충혜왕(忠惠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검교정승(檢校政丞)이 되었다.

 

최순(崔洵)

원유의 세째 아들 순(洵)은 1396년(태조5) 문과에 급제한 후 성절사(聖節使)로 중국에 다녀와 여러 관직을 거쳐 직제학(直提學)이 되었으며 세자필선(世子弼善)으로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후 중군 총제(中軍摠制)와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했다.

 

최빈(崔濱)

우청(遇淸)의 손자 빈(濱)은 언양 현감(彦陽縣監)으로 있을 때 선정(善政)을 베풀어 언양 현민들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웠다.

 

최맹현(崔孟賢)

빈(濱)의 현손(玄孫) 맹현(孟賢)은 여러 지방 관직을 거쳐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지냈는데 고을마다 선정(善政)을 베풀어 향민의 칭송을 받았다.

 

최개국(崔盖國)

순(洵)의 6세손 개국(盖國)은 1538년(중종3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고 1547년(명종2)에 정언(正言)이 되었다가 지평(持平)을 거쳐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최명선(崔明善)

명선(明善)은 1555년(명종10)에 문과에 급제하여 지방부사(地方府使)를 거쳐 예조 참판(禮曹參判)에 이르렀다.

 

최정호(崔挺豪)

정호(挺豪)는 1603년(선조3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1609년(광해군 1)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으며 은총(恩寵)이 무비(無比)하여 벽옥적(碧玉笛)을 하사받았다.

 

최혁(崔爀)

효자(孝子)로 이름난 혁(爀)이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최규석(崔奎錫)

동지돈령(同知敦寧)을 지낸 규석(奎錫)이 유명핟.

 

최동봉(崔東鳳)

학자(學者) 동봉(東鳳)은 후진양성에 전심하는 한편 문집(文集)을 남겨 문명(文名) 높은 가문을 빛냈다.

 

 

출전 <한미족대성보>.

 

 

 

항렬(行列)

 

항렬자

항렬자

항렬자

23

愚(우)

27

林(임)

31

雲(운)

24

勉(면)

28

炫(현)

32

桂(계)

25

會(회)

29

坤(곤)

33

勳(훈)

26

信(신)

30

鐘(종)

34

址(지)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충주 최씨(忠州崔氏)는 남한에 총 2,887가구, 12,16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곳의 자료는 청남선생님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입니다.
자료를 사용하실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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