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와 조상을 잘 알려면 남의 조상과 뿌리도 잘 알아야 하기에 여기에는
다른 가문의 뿌리와 조상을 알아 보는 곳으로 한다.
여기 실린 이 자료는 한국의 성씨> <민족문화대백과사전>등에서 인용한 것임.
崔(밀양최씨)
본관(本貫): 밀양(密陽)
시조(始祖): 최익대(崔益大)
유래(由來):
밀양 최씨(密陽崔氏)는 우리나라 최씨의 대종(大宗)인 경주 최씨(慶州崔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알려졌으나 성관(姓貫) 연혁에 대해서는 미상(未詳)하다. [밀양최씨계해보(密陽崔氏癸亥譜)]에 의하면 밀양 최씨는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경주 최씨의 시조)의 후손인 화숙공(和淑公) 최현우의 15세손으로 기록된 익대(益大)가 조선 숙종(肅宗)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지냈으며, 경종(景宗)이 즉위한 후 몸이 병약하고 후사(後嗣)가 없었으므로 왕세제(王世弟) 연잉군(延 君:후에 영조가 됨)을 책봉하고 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하다가 소론(小論)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던 노론(老論)의 영수 김창집(金昌集:당시 영의정)이 화를 입었던 사건에 연루되어 각처(各處)에 은거(隱居)하였다가 경기도 수리산에 들어가 변관명(變貫名)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事實)을 고증할 문헌이 없다.
그 후 익대(益大)는 영조(英祖)가 즉위하자 사면(赦免)되었고, 그의 후손들이 전국에 산거(散居)하면서 3세손 경륜(景崙)이 한성성적(漢城成籍)에 본관(本貫)을 밀양(密陽)으로 기록한 연유로 해서 익대(益大)를 일세조(一世祖) 로 하고 밀양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가문의 중요 인물
최도신(崔道信)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贈職)된 경륜(景崙)의 아들 도신(道信)이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최치갑(崔致甲)
되신의 손자 치갑(致甲)은 1841년(헌종 7)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거쳐 창덕궁위장(昌德宮衛將)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밀양 최씨(密陽崔氏)는 남한에 총 388가구, 1,84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미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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